전례 없는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그리고 불안한 국제정세로 인해 세계 경제가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국내 시장 역시 경제 전반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나타내는 소비자심리지수가 2023년 11월 말 기준으로 4개월 연속 하락하며 적신호가 켜졌다. 한 마디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불황은 늘 때가 되면 찾아오는 손님이다. 마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이 호황과 불황은 늘 되풀이된다. 이러한 불황기 비즈니스에서는 소비자의 심리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실 불황기 소비심리에는 전형적인 법칙이 있다. 소비지출이 줄고, 저렴한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추억의 복고가 뜨고, 자극적인 상품이 뜨는 식이다. 다만 최근 몇 년 사이 주된 소비층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불황을 슬기롭게 넘어가기 위한 전에 없던 소비자의 변화가 눈에 띈다. 전반적으로 소비가 다소 위축되었다는 점은 닮아 있지만, 무조건 아끼기보다는 자신의 소비지출을 주도적으로 관리한다는 점에서 최근 불황 소비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기세가 느껴진다. 그렇다면 또다시 찾아온 불황에 우리 소비자들은 어떤 변화를 보이고 있을까? 지금부터 최근 진화된 불황기 소비 트렌드를 차근차근 살펴보자.
1. 자기계발 트렌드: 불안한 상황 속 ‘나’를 통제한다
불황기의 가장 중요한 소비심리는 바로 ‘불안감’이다. 경기 침체의 시그널은 소비자의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에 개개인의 소비자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이에 최근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자기계발이 주요 소비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꾸준히 운동하기, 독서하기, 전시회 가기, 영어 공부하기 등 최근 자기계발에 몰입하는 젊은 세대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잡코리아가 2030세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직장인 자기계발 현황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6.5%가 요즘 공부하거나 자기계발하는 것이 있다고 답했다. 도서 시장 역시 자기계발서가 큰 인기다. 예스24가 발표한 ‘2023년 베스트셀러 트렌드 및 도서 판매 동향’에 따르면 자기계발서가 꾸준한 인기를 보였으며, 비슷한 맥락에서 취업·이직을 위한 실용서들도 상위권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한눈에 보이는 소비지출 관리로 불안감을 줄일 수 있는 일상 챌린지가 돋보인다. 지출을 0원으로 줄이는 극단적인 절약 행동인 ‘무지출 챌린지’에서부터 하루 식비 1만 원을 초과하지 않고 쓰는 ‘1만 원 챌린지’까지, 그 방식도 다양하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현금만 쓰면서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현금 챌린지’도 유행이다. 마치 다이어리를 꾸미듯 현금 바인더를 꾸미고 요일별로 봉투에 예산을 챙겨 넣는데, 이러한 행동을 짧은 영상으로 편집해 SNS에 올리는 챌린지로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2. 고자극 콘텐츠 트렌드: 단순하고 자극적인 것에 끌린다
두 번째로 주목할 불황기 소비심리는 바로 ‘스트레스 해소’다. 일반적으로 불황기 소비자들은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에, 이를 해소해 줄 수 있는 단순하고 원초적이며 자극적인 콘텐츠가 주목받는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성이 최근 숏폼 콘텐츠와 OTT 서비스의 발달로 인해 높은 수위의 고 자극 영상이 제작되면서 더욱 강해지고 있다.
높은 수위와 자극적인 재미로 인기 중인 일반인 예능 솔로지옥 (출처 : 넷플릭스)
대표적인 예로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답답한 갈등 스토리가 진행되다가 막판에 실마리가 풀리고 해결되는 ‘고구마’식 서사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단순한 선악 구도와 즉각적인 응징을 다룬 ‘사이다’식 서사가 인기를 끈다. 불황기일수록 소비자는 답답한 현실을 잠깐이나마 떠나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콘텐츠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최근 진행자와 출연자가 함께 술을 마시며 대화하는 술 먹방 예능이나 코미디 콘텐츠 역시 뜨거운 감자다.
실제로 최근 인크로스가 만 15세~69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미디어 이용 행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약 90%가 숏폼 콘텐츠를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작년 대비 8.4% 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자극적인 재미를 항상 손에 들고 다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처럼 고 자극 콘텐츠가 시장에 많이 등장하면서 최근 이에 빠진 도파민 중독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3. 소비 양극화 트렌드: 전략적 실속으로 진화한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소비심리는 ‘양가감정’이다. 일반적으로 불황이 닥치면 실속?알뜰?가성비 소비 행태가 확산되며 소비지출을 줄이려 노력하지만, 동시에 내 소비 수준을 유지하고픈 욕구 역시 가슴 한편에 존재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톱니효과’라 부르는데, 소비자가 자신의 소비 수준이 올라가면 다시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에 지출을 단번에 줄이기 어렵다는 뜻이다.
특히 최근 국내 소비 수준이 꾸준히 성장한 덕분에, 소비자는 불황기를 맞아 지출을 줄여야 하면서도 동시에 줄이기 싫은 양가감정에 직면하기 쉽다. 따라서 이들은 한정된 자원 속에서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든 채워가려는 ‘양극화 소비’를 선보인다. 즉, 불경기에 무조건 모든 소비가 위축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의미다.
매일 소비해야 하는 먹거리나 생활필수품은 가성비를 따지지만, 연말이나 기념일과 같은 특별한 날에는 가격이 나가더라도 고가의 상품을 택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최근 유통업계 마케팅의 핵심 전략은 ‘초저가?초대형’ 상품이다. 전례 없는 고물가로 편의점 도시락과 저가 커피가 인기를 끌고 저렴한 PB 상품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호텔 케이크가 품절 대란을 불러일으키고, 호텔 뷔페 역시 예약이 일찍이 마감된다. 연말을 특별하게 기념하고자 하는 ‘스몰 럭셔리(작은 사치)’ 수요가 꾸준한 덕이다. 이처럼 한정된 자원 속에서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워가는 전략적 실속 소비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불황 비즈니스 전략
“호황은 좋지만 불황은 더 좋다. 준비된 자에게 위기는 오히려 기회다.”
일본 파나소닉의 창업자이자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남긴 한마디다. 불황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어떠한 고민이 필요할까? 무엇보다도 소비심리와 그에 따른 행동 변화를 적확히 파악하고 그에 적절히 대응하는 기업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지금까지 살펴본 ‘불안, 스트레스, 양가감정’은 어떤 불황기라 할지라도 늘 관찰되어 온 소비 심리지만, 우리는 이에 대응하는 소비자의 행동이 늘 변화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결국 핵심은 기술 진보, 인구감소, 소비 세대교체 등과 같은 추세적 변화가 ‘불황’이라는 주기적 변화와 만나 어떤 트렌드를 만들어낼 것인가를 추론하는 일일 것이다.
한다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 서울대 심리학 학사, 서울대 소비자학 석·박사. 소비자가 구매 시 느끼는 다양한 소비 감정들과 데이터를 통한 소비 행동 분석 등의 주제를 연구하고 있으며, 삼성?LG 등 다수의 기업과 소비 트렌드 기반 신제품 개발 및 미래 전략 발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KBS1 Radio <성공 예감> 고정 출연, KBS <사사건건>, YTN <뉴스라이더>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였으며 <트렌드코리아 2024>를 비롯해 <대한민국 외식업 트렌드 vol.1> 등 다수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