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레인_ 더 투명해진 패션의 가치
대홍기획 기사입력 2024.01.29 04:21 조회 1071



글 이주영 / 남성 패션 매거진 <아레나옴므플러스> 편집장
 

새로운 시대의 소비자들은 스토리를 원한다. 그 스토리가 자신의 취향에 부합하면 더할 나위 없다. 이야기에 이어 더 직접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건 내가 살 수 있는가와 얼마나 환경을 고려하는가의 문제다. 에버레인은 그 두 가지를 충족시키고 있다.

패션 브랜드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위한 방편은 여럿 있다. 그중 가장 확실하고 영향력 있는 하나는 남다른 패션 센스를 뽐내는 유명 인사가 입어줬을 때다. K-팝 스타를 기준을 봤을 때 블랙핑크의 제니가 뭘 입고, 들었는가에 따라 브랜드의 매출이 천정부지로 솟기도 한다. 최근의 가장 직접적인 예는 제니가 일상 가방이라며 인스타그램에 소개한 브랜드 코스(COS)의 퀼티드 백이었다. 제니는 샤넬, 자크 뮈스 등의 럭셔리 브랜드 앰배서더이자 캠페인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코스의 퀼티드 백은 어떤 이해관계 없이 그가 자발적으로 소개한 가방이었다. 폭발적이었다. 없어서 못 팔았고 한때 리셀시장에서 웃돈이 얹혀 거래됐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패션 브랜드가 있다. 어떤 브랜드는 디자이너가 유명해서 뜨고, 또 어떤 브랜드는 셀러브리티에 의해 부상한다. 하지만 이렇게 대중의 선택을 받고 매출을 크게 일으켜 성장할 기회를 얻는 브랜드는 극히 적다.

 
높은 퀄리티의 원단, 저렴한 가격, 윤리적 행보와 투명한 기업 공개로 성장하고 있는 에버레인. / 출처  everlane.com
 

왕자비가 선택한 아이템

메건 마클이라는 셀러브리티가 있다. 할리우드 배우이자 영국 왕자 해리 윈저의 배우자다. 메건마클은 전자 만으로도 유명세를 가졌지만, 후자로 더욱 명망 높은 인사로 자리 잡았다. 그런 그가 애용하는 브랜드가 있다. 전 세계가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마련됐다. 브랜드 이름은 ‘에버레인(EVERLANE)’. 왕자비가 애용하는 제품이라면 당연히 비쌀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에버레인은 생각보다 저렴했다. 그런데 품질 면에서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 막말로 대박이 났다. 아니 실제 매출까지는 모르겠지만 국내에서도 ‘메건 마클 가방’ ‘ 메건 마클 슬링백’ 등으로 검색되니 그럴 것 같다. 조금 궁금해졌다. 대체 에버레인은 어떤 브랜드일까?
 

(좌부터) 배우였던 메건 마클은 영국 왕자 해리 윈저와 결혼해 왕자비가 됐다. 그녀가 착용해 화제가 된 에버레인의 데이마켓토트백과 점프수트. / 출처 @sussexroyal, everlane.com
 

나는 가끔 국내 여성 패션 브랜드 홍보팀에서 일하는 아내에게 묻곤 한다. “당신 회사 브랜드의 옷들은 왜 그렇게 비싸?” “그 정도 가격이면 웃돈 좀 더 얹어 해외 수입 브랜드 제품을 사도 될 것 같은데?” 돌아오는 답은 명료했다. “백화점 입점 수수료도 내야 하고, 직원 월급도 줘야 하고” 등등. 예상했던 답이지만 직원 월급이라는 단어에서 말문이 막혔다. 아내가 받아오는 월급도 그렇게 비싸게 팔아야만 연체되지 않고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계적 위협 요소의 해결 때문이었다. 조금 더 궁금해졌다. “그러면 제품 원가의 몇 배를 소비자가로 책정해?” 답변은 이랬다. “브랜드 별로 다르겠지만, 조금 저렴하게 파는 브랜드는 2.5배, 백화점 브랜드는 4~5배, 고가 브랜드는 6배 이상도 있을 걸?”이라고. 평균적으로 제품 원가의 4.5배 정도로 보면 될 거라고 했다. 여기에서 앞서 메건 마클에 의해 유명세를 탄 브랜드 에버레인이 왜 새로운 세대의 소비자들에게 각광받는지에 관한 이유가 도출된다.

 
원가 공개라는 혁신적 방식

에버레인의 특이점은 가격의 투명성에 있다. 가끔 럭셔리 브랜드 매장에 들렀다가 제품 가격을 보고 움찔했던 경험 한 번쯤 있을 거다. 애초에 가격에 무심한 계층이라면 모를까 말이다. 요즘처럼 쌀쌀한 날씨엔 캐시미어 소재의 제품에 손이 간다. 특히 니트나 코트 등을 캐시미어 소재로 만들면 참 가볍고 따뜻하다. 하지만 캐시미어라는 소재 자체가 비싸다. 로로피아나, 브루넬로 쿠치넬리 등의 브랜드들이 이 소재 제품들을 잘 만든다는 걸 알지만, 캐시미어니까 이렇게 비싸다는 걸 자연스레 받아들이기에는 가격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언감생심 선뜻 구매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오죽하면 이 브랜드들을 두고 콰이어트 럭셔리, 올드머니룩 등과 같은 트렌드 용어가 도출되겠나!

 
에버레인 설립자 마이클 프레이스먼은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을 고객이 알 권리가 있다며 제조 원가를 공개했다. 또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 제품의 가격도 낮춰 판매한다. / 출처 everlane.com
 

에버레인의 제품들은 좋은 소재를 사용한다. 그리고 가격대도 합리적이다. 무엇보다 에센셜 제품군을 생산하기에 에버레인 스웨터에 값비싼 럭셔리 브랜드 아이템 하나 곁들이면 감쪽같을 수도 있다. 그만큼 변별력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좋은 의미의 찬사다. 나 역시 최근 이 브랜드의 캐시미어 소재 크루넥 니트를 구입했다. A등급 캐시미어 100% 스웨터다. 가격은 한화로 229,000원. 언뜻 유니클로 캐시미어 스웨터보다 비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에버레인이 제시하는 공정 원가를 살펴보면 충분한 가치가 있다. 원단 가격이 67,246원, 설비 가격이 2,424원, 제조 인건비 12,862원, 세금 3,300원, 운송비 1,522원. 캐시미어 니트 하나의 원가는 87,353원 정도가 된다. 에버레인은 원가의 2.5배 정도로 소비자 가격을 책정한 것이다. 사실 이 정도면 굉장히 합리적이고 구매가치가 있다. 만일 다른 브랜드에서 동일 니트에 라벨을 바꿔서 판매했다면, 평균 4.5배를 곱한 약 40만 원짜리 제품이 될 확률이 크다.

더욱이 에버레인의 제품은(환경을 위해 인자를 최소화한) 최상급 재료에서 하나의 제품으로 출고되기까지 각각의 제품에 들어가는 비용을 소비자에게 완전히 공개한다. 에버레인을 이렇게 평가할 수 있겠다. ‘괜찮은 품질, 저렴한 가격’. 특히 에버레인의 제품들은 시쳇말로 유행을 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에센셜’이라 불리는 기본적인 아이템들을 생산하고 판매한다는 이야기다. 베이직한 아이템이라는 건 언제 입어도 누군가 뭐라 할 게 없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트렌드에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이 부분에서 가장 주목받는 트렌드인 ‘지속가능성’이 강조된다. 그러니까 에버레인은 민감하게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지속가능성을 실천하는 옷을 만드는 브랜드로 인지되는 게 당연하다.

 
코로나19로 인해 피해입은 지역의 푸드뱅크를 지원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등 사회적 활동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에버레인. / 출처 everlane.com / 좌우로 클릭해 더 보기
 

환경적 책임을 최우선 목표로
 
“우리는 멋진 티셔츠를 입는 것만큼이나 쉽게 올바른 선택을 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전 세계 최고의 윤리적인 공장과 파트너십을 맺는 이유입니다.
최고의 재료만을 공급받고, 우리가 만드는 제품의 실제 비용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이것은 일을 하는 새로운 방식입니다.
우리는 이를 ‘급진적 투명성(Radical Transparency)’이라고 부릅니다.”

에버레인의 회사 소개다. 이들은 탄소 중립 최소화를 실천하고 환경에 유해함을 주는 그 어떤 요소조차도 줄여나가겠다는 의지를 선언한다. 지난 몇 년 간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에서 끊임없이 상위권에 랭크됐던 환경 문제를 기업 최전선 목표로 설정한 셈이다. 수많은 트렌드 서적 및 논평에서 알 수 있듯 이 시대의 새로운 소비자 층으로 꼽히는 밀레니얼과 Z세대에게 환경 문제는 의식적 실천을 감행하게 하는 민감한 요소이기도 하다.

 
재활용 플라스틱병으로 만든 의류 라인 ReNew를 출시하는 등 패션 브랜드의 환경적 책임을 강조하고 실천해가는 에버레인 / 출처 everlane.com, @everlane
 

이들은 옷을 만드는 공정 속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이런 모습을 소비자에게 공개해 윤리적 기업이라는 믿음을 지켜가고 있다. 장기적으로 모든 합성섬유를 재활용 성분으로 대체할 계획을 세운 이들은 데님 염색에 들어가는 98%의 공업용수를 재사용하고, 폐기물을 리사이클해 벽돌 등의 자재로 만들어 주택 보급에 힘쓰고 있다. 또한 유기농 면화 재배농가 및 양모 생산자와 협력하며 공급업체에도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도록 장려하는 등 구체적 노력이 홈페이지에 게시되고 있다. 한 해에 이뤄진 진전에 대한 환경영향보고서를 발표해 개선된 점을 소비자에게 알리기도 한다.

 
에버레인은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제조 공장을 공개해 소비자의 신뢰를 얻고자 노력한다. 


긍정적 영감을 전하는 브랜드

그렇다고 다른 브랜드들을 비난하거나 폄하할 필요는 전혀 없다. 값비싼 럭셔리 하우스 브랜드들도 에버레인이 고민하는 부분을 동일하게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성, 환경보존 등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 기업에게 소비자는 굉장히 냉정하고 냉혈해지는 사례를 우리는 종종 보아왔지 않던가. 그러니 에버레인이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해내고 있는 건 결코 아니다. 오래전부터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재생 플라스틱을 지속적으로 사용해왔고, 동시에 그들은 ‘새 옷을 사지 마세요’라는 광고 캠페인까지 했으니까. 그럼에도 현시점에서 에버레인이 각광받는 건 유명 셀러브리티에 의해 적절하게 광고됐고, 또 가성비와 가심비를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들의 취향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다만 우려되는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트렌드를 좇지 않는 브랜드라고 선언한 에버레인이 조금 시간이 지난 후 트렌드에 뒤쳐지는 브랜드로 비쳐서 쇠락의 길을 걸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사례들을 우리는 숱하게 봐왔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에버레인은 제품 원가를 공개하고 자신 있게 소비자와 만난다는 점만으로도 흥미로운 브랜드 임에는 틀림없다.
Everlane ·  급진적투명성 ·  마케팅인사이트 ·  메건마클 ·  브랜드스토리 ·  사회적책임 ·  에버레인 ·  지속가능 ·  투명경영 ·  패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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