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글 장웅 | 사진·팡고TV촬영 유희래
나이키, 토스, CJ 등 빅브랜드와 협업하면서도 눈에 띄는 크리에이티브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업계의 주목받고 있는 사이드킥(Sidekick). ‘브랜드라는 영웅을 돕는 조력자가 되고 싶다’는 이념으로 사이드킥(Sidekick)을 설립한 이현성 대표를 만났다.
대표님께서는 광고에 어떻게 입문하게 되셨나요?
최단기라고 해도 될 정도로, CD라는 타이틀을 굉장히 빨리 달았습니다. 업무의 변화가 있었나요?
직원이 대표님 포함해서 두 명입니다. 적은 인원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힘들 것 같은데, 업무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요?
일단 저희는 OT를 받고 나서 회의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각자 할 일 하다가 밥 먹을 때, 혹은 커피 마실 때 간단하게 의견을 주고 받는 정도입니다. 그러면서 서로 의견이 안 맞으면 티격태격하기도 하다가, 의견이 잘 맞으면 의기투합하기도 하고.
근데 저는 약간 저 친구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 같아요. 아마 같이 일하는 친구도 서로 비슷한 느낌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고민의양을 충분히 누적시킨 상태에서 서로가 제시한 안으로 나사를 조이고 풀고 하면서 일을 진행합니다. 언뜻 보면 “두 명밖에 없는데 따로 일하는 거 아니야?”라고 할 수 있지만, D-5 정도부터는 믹스하고 수정하는 작업들을 함께하면서 엄청 치열하게 시뮬레이션합니다. 마치 수술실처럼요.
사이드킥에 근무하면 좋은 점이 있나요?
사이드킥은 어떤 회사인가요?
2018년도에 설립한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입니다. 광고 영상 기반으로 시작했지만, 자의반 타의반으로 영화 마케팅, 웹툰 형식의 홍보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굿즈나 패션 등 크리에이티브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한 회사라고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회사를 설립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제가 사람들과 굉장히 쉽게 친해지거든요. 그런데 일을 진행하면서 모질게 해야 하는 부분에서 미안한 감정이 너무 커지게 되고, 미움받을 용기가 없어서 하고 싶은 대로 못 하게 되더라고요. 그럴 거면 회사를 차리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광고라는 일이 누가 시켜서 선택하는 직업이 아니라 정말 하고 싶은 것이라 하는 건데, 너무 신경 쓸 부분이 많아지더라고요. 두 번째는 제 공간을 재미있게 인테리어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회사 공간도 대부분 제가 꾸미고 있거든요. 마지막 이유는 조금 영악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회사를 차리기 전에 몇몇 곳에서 스카웃 제의가 있었습니다. 당시 디지털 분야 젊은 CD 수요가 꽤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당시에는 잘 안되더라도 다시 돌아와서 일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회사를 차리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 것이죠. (웃음)
회사명이 ‘사이드킥(Sidekick)’인데 무슨 의미인가요?
제가 초록색을 좋아하는데, 로빈이나 루이지 같은 히어로들 옆에서 조력하는 캐릭터들이 우연히 전부 초록색 복장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 캐릭터를 외국에서는 사이드킥으로 부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브랜드를 히어로라고 하면,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의 의미로 좋겠다 싶어서 사이드킥으로 사명을 정했어요. 크리에이티브의 측면보다는 좀 캐주얼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사이드킥이라는 사명보다는 위에 태그라인인 ‘Story by’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제가 처음 광고업계에 입문했을 시기에는 선긋기, 차별화 전략들을 앞세워 공중파가 미디어로 집행하는 것이 메인이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초등학생들도 계급장 떼고 유튜브에서 글로벌 그룹들과 조회수를 대결하는 시장입니다. 구독자가 100만이 넘는 스트리머도 매일 방송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구독자 5만, 10만의 그룹들이 분기별로 한번 광고해서 뚜렷한 성과를 내긴 힘듭니다. 그래서 저는 시즌제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길게 마케팅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겠지만요. 저희는 조력자로서 브랜드의 스토리텔링을 도와주기 때문에 ‘Story by’라는 태그라인에 더 힘을 싣고 싶습니다.
대표님께서는 광고에 어떻게 입문하게 되셨나요?
처음 시작은 광고 쪽은 아니었습니다. 공대를 졸업하고 프로그래밍 일을 하다가 포토샵이 너무 재미있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영화 포스터나 공연 배너 만드는 회사로 이직했습니다. 그러다 일본 광고회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보고 광고가 재밌을 것 같아서 조감독으로 지원해서 잠깐 일했습니다. 그때 광고는 감독의 역할이 전부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러다가 감독이 생각하던 것과는 조금 달라서(웃음), 기획으로 옮기게 됐습니다. 그리고 카피라이터 제의를 받게 되면서 4년 차에 우연한 기회로 CD까지 달게 됐죠. 그러다 보니 이렇게 회사까지 차려서 계속 일하게 됐습니다.
AE에서 카피라이터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진 않은데, 어땠나요?
사실 다른 직무에 있는 분들이 들으면 기분이 나쁠 순 있지만, 각자의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으니까 편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카피라이터가 광고의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카피라이터는 약간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누가 해보라고 하지 않았으면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조차 못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해 보니 카피라이터가 제가 생각했던 광고 업무와 제일 근접했었습니다. 머릿속 청사진이랑 가장 싱크로가 잘 맞았던 거죠.
제가 그전에 PD 빼고 모든 직무를 경험했었거든요. (웃음) 그래서 카피라이터를 계속했던 것 같아요. 우연히 카피라이터를 시작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된 것도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누구든 노력하면 A급 정도의카피라이터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최단기라고 해도 될 정도로, CD라는 타이틀을 굉장히 빨리 달았습니다. 업무의 변화가 있었나요?
CD는 정말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아이디어만 잘 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 팀원들의 성향을 파악해서 동등한 위치에서 아이디어가 오고 갈 수 있도록 회의 온도를 균일하게 맞춰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건강하고 건설적인 회의가 이뤄지지 않거든요. 그렇게 팀원들 끌고, 따라오는 것을 신경 쓰다 보면 정말 하루가 모자랄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이제 회사를 운영하게 되면서 예산이나 외부 스텝들 케어까지 신경 써야 해서 정말 일이 많아졌죠.
그래도 CD 3~4년 차가 넘어가면 어느 정도 본능적으로 루틴이 잡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어려운 부분만 얘기한 것 같은데 사람을 대하는 일에 있어서는 굉장히 재밌습니다. CD는 정말 재밌는 일인 것 같아요.
직원이 대표님 포함해서 두 명입니다. 적은 인원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힘들 것 같은데, 업무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요?
일단 저희는 OT를 받고 나서 회의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각자 할 일 하다가 밥 먹을 때, 혹은 커피 마실 때 간단하게 의견을 주고 받는 정도입니다. 그러면서 서로 의견이 안 맞으면 티격태격하기도 하다가, 의견이 잘 맞으면 의기투합하기도 하고.
근데 저는 약간 저 친구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 같아요. 아마 같이 일하는 친구도 서로 비슷한 느낌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고민의양을 충분히 누적시킨 상태에서 서로가 제시한 안으로 나사를 조이고 풀고 하면서 일을 진행합니다. 언뜻 보면 “두 명밖에 없는데 따로 일하는 거 아니야?”라고 할 수 있지만, D-5 정도부터는 믹스하고 수정하는 작업들을 함께하면서 엄청 치열하게 시뮬레이션합니다. 마치 수술실처럼요.
회사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내 문화나 가치관이 있나요?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희 회사가 인원이 적다 보니까 서로의 의견에 대해 감시(검증)하는 역할을 하기는 어렵거든요. 그러면 내 아이디어를 판단하는 기준은 결국 스스로가 돼야 해요. 그래서 스스로의 아이디어를 통과시키는 기준이 굉장히 높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평소에 보는 것들,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수준이 높아야 합니다. 그래서 제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조금이라도 더 고민하려고 하는 덕목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회사의 직원 채용 계획이나 특별한 절차가 있나요?
사실 제가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회사에 들어오는 문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당장 인력을 확실하게 충원할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메일을 통해서라도 일하고 싶다고 하는 친구들은 언제라도 와서 인턴이라도 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결코 인턴이라고 쉬운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프로젝트에 전부 참여시켜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경험하게 해줍니다. 또 경험을 기반으로 어느 회사에 가고 싶다고 하면 정말 모든 노력을 다해 도와줍니다. 한 가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연차와 직무 상관없이 다양한 툴을 배워서, 본인의 아이디어에 대해서 최대한 할 수 있는 지점까지는 스스로의 손을 거치도록 하는 전문가적 마인드로 욕심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최종적으로는 5~10명 정도로 그러한 친구들과 함께 회사를 꾸려나가는 것이 현재의 목표입니다.
사이드킥에 근무하면 좋은 점이 있나요?
회사 다니면서 돈 하나도 안 쓰게 합니다. 교통비나 식비 등 일하면서 돈 들어가는 건 모두 지원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책임감있게 일한다면 철저한 신뢰를 가지고 근무시간이나 출퇴근은 전혀 터치하지 않습니다. 내가 회사에서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하면 나름 잘 맞는 회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사이드킥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제가 자부심을 느끼는 프로젝트가 있어요.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민주당 총선 공약 발표 광고 캠페인’이 저에게는 매우 특별합니다. “도대체 정치인들은 무슨 생각을하고 있을까?”를 독특하게 표현하고 싶어서 영화 킹스맨에서 머리가 터지는 장면을 모티브로 삼아 실제 정치인들의 머리가 쪼개지는 연출을 도전했습니다.
국회 사무실에서 PT한다는 것도 재밌었어요. 머리가 쪼개지는 장면에서 보시던 몇몇 분들이 나가시고, 헛기침도 하셨는데, 회의 석상에 계시던 유명한 의원 한 분께서 책임지고 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순식간에 진행하게 됐는데, 사실 가장 재미있었던 순간은 공약 발표 현장에서의 반응이었습니다. 굉장히 엄숙한 분위기에서 머리가 딱 쪼개질 때 기자들이 웃음이 빵 터지면서 플래시가 터졌는데, 그때의 쾌감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감시와 기록의 시선을 가지고 온 사람들을 무장해제 시켰을 때 그리고 그걸 유튜브 라이브로 볼 때의 쾌감은 좀 굉장했어요.
또 하나는, ‘스칼프메드’라는 샴푸 광고 캠페인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듭니다. 국내의 광고 톤을 벗어나서 태국이나 미국 올드스파이스에서 지향하는 톤앤무드를 국내에서 구현할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하면서 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디지털 기반이다 보니 화질 때문에 원본 상태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서 아쉽지만, 영상 미학적으로 접근했을 때 가장 만족스러운 광고였습니다.
작년 나이키, 토스, 아이들나라의 광고 캠페인이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해당 캠페인에 대한 기획 전략이나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것들이 있나요?
일단 공통적으로 클라이언트들의 감각적 수준이 굉장히 높았습니다. 비유하자면 수능의 킬러문항 같은 광고주들이에요.(웃음) 나이키 같은 경우에는 로컬라이징을 하면서 보여주는 뻔한 클리셰(cliché)들이 있습니다. DDP, 한옥, 명동, K-POP 이런 것들이요. 그런데 글로벌에서 그런 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리엔탈리즘을 적당하게 가져가면서 구현하는 부분이 어려웠습니다.
토스는 마치 콜로세움에서 싸우는 검투사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클라이언트가 자기 브랜드에 대해 완벽하게 스터디가 되어 있어서, 프로젝트에 관해 설명을 듣고는마치 개인사업자들처럼 열정적으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던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엘지유플러스의 교육 서비스인 아이들나라는 태블릿을 아이들에게 보여준다는 죄책감이나 추가 구독이나 유료 전환에 대한 명확한 고민이 있었던 케이스였습니다. 그래서 클라이언트와 매달 티타임을 가질 정도로 자주 커뮤니케이션했었습니다. 그냥 봤을 땐 쿨하고 멋진 광고들처럼 보이지만, 굉장히 고차원의 클라이언트들과 고난이도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들이 영상 뒤에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많은 광고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는데,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던 대표님만의 노하우가 있나요?
두 가지 정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선 PPT 문서와 광고에서 첫 도입부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소설 설국의 도입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처럼 시작부터 매력적인 어필을 하려고 해요. 농구에 비유하자면 ‘퍼스트 스텝’처럼 돌파를 위한 첫발이 굉장히 중요한 거죠. 두 번째는 그런 도입부를 추구한다고 해서 겉만 화려해서는 안 돼요. 두터운 사전조사, 브랜드 스터디를 기반으로 묵직한 인사이트 한 방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가벼워 보이지 않으려고 진짜 공부 많이 하고, 준비 많이 해요. 그래서 질의 응답에 강한 편이기도 합니다. 광고주가 시간 관계상 질의 응답을 생략한다고 할 때가 있는데, 그런 경우 대부분 떨어졌던 것 같기도 하네요. (웃음)
회사의 나아갈 방향 혹은 비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종종 이런 얘기를 합니다. 이 회사가 좋은 노후가 됐으면 좋겠다고요.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과 멋진 창작 작업을 하면서 오래 회사에 다니고 싶거든요. 물론 회사가 돈을 잘 벌어서 잘 줘야 노후 준비가 되겠죠? 소수 정예라도 진짜 가족들처럼 동료들과 다같이 모여 바비큐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물론 아주 평화롭고 풍요롭게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더 있으면 해주세요
요즘 30대 주니어들이 나와서 회사를 차리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너무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느낌이냐면, 빈폴이나 폴로밖에 없다가 도메스틱(domestic) 브랜드가 쫙 생기는 느낌이에요. 유튜브 팡고TV에 올라온 인터뷰를 보면서도 소규모로 정말 멋있게 일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들 새해에도 파이팅 했으면 좋겠고, 경쟁자라기보다는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동반자로 여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