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는 죽었다. 20여 년간 들어온 주장이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의 도입과 함께 레거시 미디어 광고의 효과가 급락하면서 등장한 이 주장은 파격적이었으며 설득력이 있었다. 2002년 기대에 부풀어 미국 텍사스-오스틴 대학 광고학과의 조교수로 부임했을 때 첫 교수회의의 주제는 학과명 변경이었다. 광고의 존속 여부가 불투명하니 미래지향적인 학과명으로 바꾸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광고대행사에서 일하고 광고 전공 학위를 취득한 후 광고를 연구하고 가르치기 위해 광고학과에 왔는데, 학과의 정체성뿐 아니라 나의 연구자, 교육자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친 열띤 논의의 결과는 기존 학과명 ‘광고학과’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광고’가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광고’의 영역, 방법, 의미가 달라지는 것뿐이라고 합의했기 때문이다. 이 경험은 광고의 본질과 가치를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해 줬다. 실제로 우리는 급속하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광고가 어떻게 생존하고 진화해 왔는지를 목도해 왔다. 그래서 이제는 ‘광고는 죽었다’는 주장이 힘을 잃고 새로운 기술, 플랫폼, 마케팅 방법 등을 부각하기 위해 사용하는 다소 상투적인 표현으로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광고산업을 보면 이 주장이 다시 힘을 얻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광고시장 축소, 쿠키리스(Cookie-less) 시대로의 전환, 개인정보 보호 규제 강화, AI 기술 발전의 가속화 등 광고업계가 직면한 어려움과 과제는 많은데 새롭게 도전하고 투자하며 위기를 타개해 거듭날 수 있는 체질과 동력이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현상 유지에도 급급하며 심지어 일부 광고회사들이 존폐의 기로에 있다는 소식은 안타까움을 더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왜 지금 광고산업은 위기인가. 소위 세상의 모든 것에 영향을 받는다는 광고산업이지만 현재의 위기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환경적 요인 외에도 오랫동안 해결해 오지 못한 내부적인 문제들의 악화에 기인한다고 보인다.
광고업의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광고주의 불합리한 요구에 응하며 과도한 출혈 경쟁으로 스스로 가치를 낮추는 현실이다. 일부 부당 광고, 유해 광고, 불편 광고, 뒷광고 등은 광고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사회적 인식을 악화시킨다.
광고는 죽지 않았다. 재도약을 준비할 뿐이다.
뛰어난 인재들은 더 이상 광고회사에 가지 않는다. 강의 시간에 광고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공모전에 참여하던 학생들도 광고는 힘들고 대접받지 못한다며 다른 진로를 선택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광고업에 대한 부정적인 조언을 현직 광고인 선배에게 들었다고 할 때 가슴이 더 아프다. 광고인 스스로가 자부심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광고업의 매력이 낮아진 것인가 한숨이 나온다. 창의성이 중요한 광고업의 동력은 사람이다. 좋은 인재가 영입되지 않는다면 광고의 미래는 없다.
‘광고산업진흥법’은 이러한 위기의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고 산업 제반적인 환경을 개선해 광고의 과학화와 고도화를 이루기 위해서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광고가 우리 경제와 사회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하는지 그 가치를 알리고 진흥해야 할 중요한 산업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는 소수의 단체나 회사가 할 수 없는 일이다. 광고계가 힘을 합쳐 한목소리를 낼 때 가능한 일이다. 물론 다른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지만 ‘광고산업진흥법’은 광고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제고하고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광고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할 것이다. ‘광고산업진흥법’을 계기로 치열한 고민과 자정 노력으로 광고 산업의 체질 개선과 발전을 이루길 기대한다.
광고는 죽지 않았다. 재도약을 준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