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 엠블럼과 마스코트 프리주 / 출처 press.paris2024.org
그러나 2024년 올림픽 엠블럼의 진정한 의미는 통합에 있다. 과거 올림픽과 패럴림픽 엠블럼은 별도로 제작했었다. 이번에는 두 행사의 디자인을 통합 발표함으로써 올림픽에 뒤이어 열리는 패럴림픽 역시 귀한 축제임을 선포했다. 새로 공개한 마스코트 ‘프리주(Les Phryges)’ 또한 이러한 가치를 두고 개발됐다(유일한 차이점이라면 패럴림픽 프리주는 한쪽에 의족을 달았다).
매번 올림픽은 평균 5개 내외의 종목이 편입되고 퇴출하기를 반복한다(실제로 지난 100여 년간 수많은 종목이 편입되고 퇴출됐다). 꾸준한 세대교체를 통해 Fresh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스포츠는 육상, 수영, 사이클, 체조, 펜싱 5개다. 이들은 기초 종목이자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종목임을 증명한 셈이다. IOC는 1989년 총회의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스포츠’, ‘남자부와 여자부가 함께 있는 스포츠’라는 기준을 바탕으로 올림픽 종목을 선정한다. 여기에 올림픽 개최국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는 편이다. 야구를 보라! 이번 올림픽 무대에서 야구를 볼 수 없지만 4년만 지나면 야구 본산지인 LA 올림픽에서 다시 볼 수 있다. 결국 올림픽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화된 스포츠를 발굴하고 여기에 해당 주최국에서 인기 있는 종목을 첨가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고 있다.
② 인류를 향한 메시지
IOC는 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를 향한 희망과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류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전쟁, 마약, 테러, 기후 변화, 차별, 혐오와 같은 골칫거리를 전 세계인에게 4년(동계까지 치면 2년) 마다 반복적으로 각성시키면서 문제해결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한다. 동서 냉전 시대가 종식되고 최근 10여 년간 IOC가 가장 의미를 뒀던 주제가 바로 ‘Save the world’다. 이번 파리올림픽에서는 새롭게 경기장을 건설하는 대신 기존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는 형태로, 선수촌에서는 에어컨이 없는 친환경 파리올림픽이라는 방식으로 구현했다.
관중에게는 이번 올림픽으로부터 발생할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중교통, 자전거, 도보 등을 적극 장려한다. 경기 티켓 소지자에 한해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자전거 주차장을 곳곳에 배치해 편의성을 높였다. 파리 시내엔 총 2만 대까지 수용 가능한 자전거 전용 주차 공간과 400㎞의 자전거 도로도 조성을 마친 상태다. 선수단 메뉴에서는 육류 제품을 줄였고 스케이트보드와 BMX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에선 100% 채식주의자 메뉴로 식사가 구성된다. 유럽은 기후변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대륙으로 파리의 각종 친환경 정책은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전 세계에 각인시켜 파리가 지구온난화라는 시대 가치를 이끄는 도시로 거듭나게 할 것이다.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대명사 ‘평등’ 역시 핵심 메시지로 선정됐다. 평등을 실천하는 첫 단추는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동일한 엠블럼 사용이다. 또 남녀 출전 선수 성비를 50대 50으로 균형을 이뤄 성평등(Perfect Gender Equality)을 이뤄냈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해 장애인 접근이 어려운 버스 정류장 및 역의 시설을 개선할 것을 약속했고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택시를 1,000대까지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IOC는 한 손에는 세대교체, 다른 한 손으로는 인류를 향한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흥행과 명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재미있는 경기를 내세워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실현하겠다는데 어떤 기업이 후원을 마다할 리 있겠는가?
올림픽 스폰서십 구조와 비용
올림픽 스폰서십 구조는 전 세계 스포츠 스폰서십의 바로미터다. 분야별 독점권을 주는 구조는 스폰서를 하려는 기업 간에 묘한 경쟁심을 불러일으켜 올림픽 후원사가 되고 싶은 욕망을 부추긴다(1997년 삼성이 월드와이드 올림픽 파트너로 선정되자 뉴스와 신문에 대서특필 됐는데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것 같아 기분 좋았던 기억이 있다). 올림픽의 스폰서십 구조와 비용을 살펴보면 억 소리 나는 메가 이벤트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2024 파리올림픽 스폰서십 구조는 다음과 같다. 월드와이드 올림픽 파트너, 프리미어 파트너((구) 골드 파트너십), 공식 파트너, 공식 서포터 순이다. 월드와이드 올림픽 파트너는 올림픽과 관련한 글로벌 독점 마케팅 권한을 지닌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올림픽 마케팅 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기록을 측정하는 시계는 오메가가 독점하고, 선수촌, 국제방송센터(IBC), 미디어프레스센터(MPC), 메가스토어 등 경기장 내에서는 오직 비자카드로만 결제가 가능하며, 올림픽 특별판 스마트폰은 삼성전자만 출시할 수 있다. IOC는 음료부터 생활용품, IT 기술, 컴퓨팅 등 분야별로 하나의 업체를 선정한다. 스폰서십 규모는 기업당 4년 동안 평균 1억 달러(1,387억 원) 수준이다.
프리미어 파트너는 이른바 ‘로컬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파리올림픽에서는 프랑스 기업이 대부분이다. 글로벌 기업보다는 올림픽 개최국의 기업으로 선정된다. 여기서부터는 IOC의 손을 떠나 개최국 올림픽 조직위에서 업체를 선정한다. 프리미어 파트너로 선정되면 파리올림픽에서 1년간 마케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프리미어 파트너십 규모는 1년 동안 평균 1억 2천만 달러 (약 1,650억 원) 수준이다. 단, 프리미어 파트너십 규모는 기업마다 차이가 있다. 2024 파리올림픽 프리미어 파트너 LVMH는 이번 올림픽의 최대 후원사로 올림픽과 패럴림픽에 1억 5천만 유로(약 2천2백억 원)를 지급했다.
공식 파트너는 프리미어 파트너 아래 단계다. 프리미어 파트너보다 올림픽을 마케팅으로 활용할 수 있는 권한과 범위가 줄어든다. 공식 파트너 스폰서십 규모는 약 5천만 달러(약 690억 원) 수준이다. 공식 서포터는 후원 금액보다 기업 기술이나 제품,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올림픽과 하나 된 네이티브 마케팅
올림픽 후원 기업은 조국을 위해 헌신적으로 싸우는 선수들의 감동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이들은 경기를 통한 단순 로고 노출뿐만 아니라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를 후원함으로써 해당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인식을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현재의 소비자는 기업의 활동에 감동하지 않으면 구매 활동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PR컨설팅 회사 에델만은 소비자의 85%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브랜드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올림픽 마케팅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P&G는 올림픽이라는 특성을 십분 활용해 홍보 계획을 수립했다. 수많은 기업 중 이들의 마케팅이 유독 눈에 띈 이유는 대부분이 선수에 초점을 맞춘 데 반해 P&G는 선수의 어머니를 조명했기 때문이다. ‘땡큐맘(Thank you Mom) 캠페인’은 어려운 순간마다 선수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어머니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았고 누군가를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강해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2012 런던 올림픽 오프라인에서는 ‘The P&G Family Home’을 운영해 또 다른 화제를 낳았다. 올림픽 기간 중 전 세계에서 온 어머니(아버지)와 가족들이 쉬면서 올림픽을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한 것이다. P&G는 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런던 템스강 부근 벽돌 창고에 축구장 크기의 공간을 개조했다. 한 번에 4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로 하루 종일 뷔페 음식을 제공했으며 다양한 P&G 제품을 곳곳에 비치해 자연스럽게 시연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어린이를 위한 놀이방도 만들었는데(놀이방 이름은 자신의 기저귀 브랜드인 팸퍼스) 이는 자칫 상업적으로 보일 수 있는 기업 활동을 보다 자연스럽게 녹여냈다는 평가다.
폐막식 다음 날에는 그간 The P&G Family Home에서 사용한 가구, 액세서리, 기타 품목을 해당 지역 사회단체에 기부하고 미국 내 신체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청소년 스포츠 프로그램에 5만 달러를 기부함으로써 사회공헌 마케팅 활동에 마침표를 찍었다. P&G는 이러한 활동으로 추가 매출은 물론 각종 SNS를 통한 공유로 소비자 선호도 10%를 덤으로 얻었다. 이들의 마케팅 성과는 주요 고객의 80%를 차지하는 주부를 겨냥한 것이 주요했다는 분석이다.
SNS로 소통하는 소셜림픽 시대
SNS가 전 세계인의 삶 속에 파고들면서 선수와 선수, 선수와 관중 간 실시간 소통이 가능해졌다. 이에 SNS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마케팅 활동도 눈에 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SNS를 통해 진행되는 올림픽을 말하는 소셜림픽(Social+Olympic)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관중들은 선수들의 백스테이지 모습을 엿볼 수 있게 됐고 응원 챌린지와 같은 방식으로 선수를 응원하면서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올림픽을 즐기게 됐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는 선수에게 응원 영상과 글을 전달하는 ‘TOKYO 2020 Share The Passion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이 무관중 상황에서 펼쳐졌고 도쿄 조직위는 SNS를 활용해 전 세계인이 쉽게 함께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다. 메시지는 총 3종류였다. ‘미리 준비된 음원에 맞춘 댄스와 박수로 선수를 응원하는 15초 이내의 동영상’, ‘자유롭게 촬영한 30초 이내의 동영상’, ‘140 글자 이내로 작성한 텍스트’다. 이 응원을 SNS에 올리면 조직위원회에서 선별해 경기장 내 LED에서 재생하는 방식이다.
2012 런던올림픽 당시에는 해외에서 틱톡을 통해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챌린지가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서는 MBC가 카카오와 제휴를 맺고 런던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에게 응원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단톡방을 만들었다. 선수 응원 메시지는 선별 과정을 거쳐 MBC 올림픽 중계방송 중에 실시간으로 반영됐다. 2016 리우올림픽 기간에는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통해 각국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 장면이 공개되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당시 리우올림픽 조직위는 리듬체조 손연재 선수를 비롯해 10명의 어린 선수를 소개하며 팔로잉을 추천하기도 했다.
종합하자면 이제 경기장 내적으로는 기존 레거시 미디어가 오리지널 라이브 및 VOD 콘텐츠 제작에 주력하고, 경기장 외적으로는 SNS 미디어가 선수들의 백스테이지 모습을 공개하면서 역할을 분담하게 됐다. IOC는 새로운 매체를 활용해 올림픽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모습을 관중에게 전하며 선수와 관중 모두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혁신의 인큐베이터 올림픽, AI를 활용하다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기술, 특히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으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지난 4월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영국 런던에서 ‘올림픽 AI 어젠다’를 발표했다. 그는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고 말하며 향후 올림픽에서 IOC가 적극적으로 나서 AI가 일으키는 변화를 받아들이고, 변화를 이끄는 주체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이번 파리올림픽은 2022년 11월 챗GPT가 세상에 공개된 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올림픽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역사적으로 스포츠 현장은 다양한 기술을 실험하고 꽃 피우는 인큐베이터로 활용됐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형인 지금 2024 파리올림픽에는 다양한 AI 기술이 적용됐다.
AI 심판 JSS(Judging Support System) 도입 | 빠르게 움직이는 체조 선수의 미세한 움직임을 카메라로 포착하고, AI가 이미지를 분석해 회전 수 및 동작의 정확성을 판단한다. 육안으로 분간하기 어려운 복잡한 동작을 더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게 됐다. |
3D 컴퓨터 비전 기술 도입 | 올림픽 공식 타임키퍼 오메가가 AI 기반의 3D 컴퓨터 비전 기술을 도입한다. 예전에는 선수에게 전자태그(RFID)를 부착했는데 이제 광학 센서만으로 선수들의 퍼포먼스를 분석할 수 있게 됐다. 체조 선수의 발 각도나 장대높이뛰기 선수와 바 간격이 자동으로 측정되고, 다이빙에서는 공중에 체류하는 시간과 입수하는 속도가 심판에게 제공된다. 테니스나 비치발리볼에서도 이러한 기술이 적용된다. 이렇게 산출한 데이터는 4K UHD 그래픽으로 제공될 계획이다. |
AI 스포츠 캐스터 등장 | 미국 방송사 NBC는 유명 스포츠 캐스터인 알 마이클스의 AI 버전을 제작 중이다. 그의 목소리를 활용해 올림픽 경기 결과 요약 방송을 진행한다는 구상이다. 10분 분량의 AI 버전 올림픽 경기 요약 서비스는 월 20달러 피콕 프리미엄 유료 서비스를 통해 제공될 예정이다. |
AI 악플 제거기 활약 | 올림픽 기간 전 세계 시청자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운동선수들이 각종 악플과 비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AI를 활용한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17일 동안 5억 건 이상의 SNS 게시물이 생성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AI 서비스는 35개 이상의 언어로 1만 5,000여 선수 및 관계자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모니터링해 게시물에 악의적인 내용이 올라오기 전에 글을 지워버릴 예정이다. |
도심항공교통 UAM(Urban Air Mobility) 시행 | 프랑스는 개최 기간 동안 파리샤를드골공항 등 5곳에 UAM 승강장인 버티포트를 건설하고 에어택시를 운행한다. 1회 전기 충전으로 조종사 1명이 승객 1명을 태우고 35km 이내의 거리를 비행하며 이를 시범 운영으로 10년 내 파리 전역으로 서비스를 확대한다. |
시각장애인을 위한 AI 음성 안내 서비스 |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드론쇼로 주목받았던 인텔은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AI 서비스를 대거 선보인다는 계획이며, 시각장애인을 위해 올림픽 경기장 내부 곳곳을 자동 인식해 음성으로 방향을 안내해 주는 스마트폰 AI 내비게이션을 제공한다. |
실재한다고 느낄 수 있는 인류 최대의 오프라인 행사
이번 올림픽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열리는 첫 번째 대형 메가 이벤트로 우리가 실재한다고 느낄 수 있는 인류 최대의 오프라인 행사다. 실제로 이번 올림픽에서는 최초로 일반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경기가 열린다. 운동 초보, 고수, 장애인, 비장애인 할 것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마라톤(여러 코스 중 선택 가능)과 야외 사이클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2024 파리에서 관객은 더 이상 좌석에 앉아 박수를 보내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 선수가 되어 올림픽 경기에 동참하며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참여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그간 일상생활에서 AI가 만들어내는 순발력 넘치고 팬시한 이미지는 적어도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참가자 스스로가 경험하고 느낀 다양한 활동으로 잠시나마 압도될 것이다.
이제 다시 올림픽이다. 더 빨리 뛰고, 더 높이 던지고, 더 힘차게 달리며 함께 하고 있다는 인류 DNA에 각인된 본능이 깨어날 차례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마지막 메가 이벤트가 인류에게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가지는지 자신만의 시각으로 살펴보자. 잠시 온라인을 차단하고 오프라인에 접속해 몸과 마음을 흔들어 깨워 정신을 차려본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세상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은 욕망을 챗GPT에게 물어보는 건 적어도 올림픽 기간에는 잠시 미뤄두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