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쓰오일 광고를 기억하는가. 출근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에쓰오일 CM송을 들은 날에는 저절 로 흥얼거리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동네 어린아이들도 에쓰오일 CM송을 부르고 다닐 정도였다. 그야말로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우며, 한번 걸리면 빠져나오기 힘든 중독성 높은 광고였다.
에쓰오일의이 광고는 벌써 3년이 흘렀는데, ‘좋은 기름’이라는 하나의 메시지만을 고집스럽게 강조해왔고, 같은 멜로디의 CM송도 3년을 유지했다. 그동안의 매출추이를 보면 2006년에는 14조6천억 원, 2007년에는 15조2천억 원으로 광고를 시작한 지 1년이 넘도록 매출에 이렇다 할 커다란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2년 후가 지나서인 2008년이 되어서 매출이 23조를 돌파, 눈에 띌 만큼 훌쩍 성장했다.
에쓰오일은 다른 정유사에 습관화되어 있었던 고객의 행동을 쉽게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던 것 같다. 그래서 고객의 행동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매우 견고하고 세밀하며 인내심이 요구되는 시간적 접근 방법을 택했다. 단순히 광고 몇 편으로 인지 수준을 높여 구매로 직결시키겠다는 허무맹랑한 욕심은 버리고 인내심을 가지고 시장변화를 지켜보았을 것이다.
‘Knowing is Liking’
광고가 즉시 고객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이 아니라는 점은 고객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낯선 사람에게 이유 모를 거부감을 느끼듯, 알지 못하는 브랜드 대해서 낯가림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고객의 머릿속에는‘ 내가 아는 브랜드는 좋은 브랜드, 알지 못하는 브랜드는 안 좋은 브랜드’라는 명제가 박혀있는 것이다. 즉 ‘seeing is believing’ 이 아니라 ‘knowing is liking’ 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가치를 내재하고 있는 브랜드라고 해도 고객이 그 브랜드와 친숙하지 못하다면 안 좋은 브랜드로 전락해 버릴 수 있다. 따라서 구매 전 고객의 머릿속에서 브랜드와 친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광고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브랜드와 고객의 친밀도를 높여주기 위해서는 심리적인 거리감을 줄여주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반복적으로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따라서 그 기회라는 것을 광고가 제공해 주며 이는 시간이 요구되는 작업이 된다. 단지 한 달 간의 광고로 매출의 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사실상 매우 불가능한 일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리테일 매장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어구가 있다.‘ First Come, First Serve!’ 상당히 합리적인 말이다. 먼저 온 고객에게 먼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고객의 머릿속도 마찬가지다. 고객이 구매결정을 할 때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가 먼저 구매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의사결정의 시간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먼저 떠오른 브랜드를 고려하게 될 수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중요한 순간에 고객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고려되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객의 두뇌를 세뇌시킬 필요가 있다. 광고라는 것은 이러한 시각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봄비 젖어들 듯 가슴속에 서서히 스며드는 광고의 힘’
근래 강남의 한 지역에서 기이한 현상이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엄청난 경쟁률에 감히 뛰어들 생각도 못할 아파트 분양시장에서 경기침체로 인한 미분양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다른 때와는 달리 고객들은 두 개의 잘 알려진 아파트 브랜드를 두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일반적으로 아파트를 선택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평형대 분양가, 교육여건, 주변 편의시설, 교통 등이다. 그러나 이 두 아파트는 이러한 모든 고려요인들이 유사했다. 그렇다면 고객들은 결국 무엇에 의해 아파트를 선택하게 되었을까. 브랜드 이미지였다.
어떤 고객은‘ 레미안’이라는 브랜드에서 이루어질 수 없었던 첫사랑과의 막연한 그리움과 재회를 떠올리며 설레는 감정을, 어떤 고객은‘ 자이’라는 브랜드에서 이웃과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따뜻한 감정을 떠올렸다. 지난 3년간 무심코 바라보았다고 생각했던 아파트광고들이 고객들의 머릿속에 하나의 영상으로 남아있었고, 그것이 곧 고객의 마음속을 움직이고 있었다.
무엇을 떠올렸던 간에 그간 3년간의 광고가 효력을 발휘하는 시간이었다. 아파트 같은 즉각적인 구매가 일어나기 어려운 고관여 제품인 경우에는 더더욱 장기적 투자의 관점에서 광고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어느 순간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