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자 한다면 디자인에 투자해야 한다. 이제 시장을 키우는 힘은 디자인이다. 소비자가 디자인만 보고서도 물건을 사는 시대며, 디자인의 유혹 때문에 새로운 소비를 하는 시대다. 디자인이 곧 소비도 촉진시키고, 시장도 창출시키는 힘이다.
휴대폰이 고장 나거나 휴대폰의 새로운 기능이 필요해서 새 휴대폰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디자인의 휴대폰을 갖고 싶거나 새로운 유행을 따라가고 싶어서 휴대폰을 바꾸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모바일 포털 사이트 모키에서 4,5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8.7%가 디자인을 가장 중요시한다고 응답했으며 28.5%가 기능을 꼽았다. 이에 반해 가격과 브랜드는 구매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결과로 볼 때, 새로운 디자인의 휴대폰이 나오면 새로운 소비도 만들어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휴대폰은 디자인만 보고 산다?
휴대폰뿐만이 아니다. 아파트와 같이 비싼 제품에서도 디자인이 주요 구매 결정요인이 된다. 실제로 아파트 디자인 차별화 바람이 불면서, 관련한 특허와 저작권의 등록이 증가하고 있다.
디자인이 아파트라는 상품에서 중요한 변별력이 되면서, 자사의 디자인 콘셉트를 보호하려하기 때문이다. 아파트의 외관과 평면, 공용공간의 설계, 1층의 공용홀, 아파트의 옥탑부, 조명과 조경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소별로 디자인 저작권을 등록하고 있는 것이다.
건설에서도 디자인이 돈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셈이다.
왜 신용카드에 유명 디자이너의 디자인이 필요할까?
KB국민카드는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에게 카드 디자인을 맡겨서 화려한 카드 디자인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현대카드는 스위스 화폐 디자이너 레옹 스톡에게‘뉴 알파벳’시리즈의 디자인을 맡겼는데 지폐처럼 각기 다른 미세한 무늬가 반복 인쇄되도록 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고,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에게는‘더 블랙’의 디자인을 맡겨 초우량고객을 위한 카드라는 이미지를 심어내는데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울러 라파엘로의‘두 천사’들을 비롯한 세계적인 명화를 프린트한 갤러리 카드를 한정 출시했는데 단숨에 매진되기도 했다. 사용자로 하여금 카드를 많이 쓰도록 하는 것이 신용카드 회사로서는 가장 큰 이득이다. 그런데 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카드를 가지는 것이다. 갖고 싶은 카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카드결제가 아주 보편화된 시대에 하루에도 몇 번씩 카드를 꺼낼 일이 있는 사람들에겐 카드 디자인도 중요한 자신의 아이덴티티 표현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카드 디자인이야말로 카드라는 금융서비스를 선택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카드가 예쁘고 멋지다고 수수료가 적다거나 무이자 할부가 더 길다거나, 더 싼 이율로 현금서비스를 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카드 디자인에 유명 디자이너나 세계적 명화를 사용하면서 비용은 더 소요되지만, 그에 따른 사용자들의 만족도는 더 커지고, 아울러 갖고 싶은 카드와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카드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어서 비용 대비 효과는 충분한 것이다.
실용적 가치이전에 감성적 가치, 즉 카드 사용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무언가를 디자인에서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IT 히트상품도 더 빨리 집중적으로 소비된다?
1979년 출시한 소니의 워크맨은 1억대를 파는데 13.5년, 1989년 출시한 닌텐도의 게임보이는 1억대 판매까지 11년, 2001년 출시된 애플의 아이팟은 1억대 판매까지 5.5년, 2004년 출시된 모토로라의 레이저폰은 1억대 판매까지 3.5년이 걸렸다.
1억대 판매라는 초히트상품이 되는 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디지털 기기에 대한 소비문화가 확대 되었기에 히트상품이 더 빨리 더 많이 팔리기도 하고, 사람들의 소득수준도 늘고 그에 따른 소비여력도 늘어서라는 것도 이유가 된다.
하지만 숨겨진 이유로 디자인 소비를 들고 싶다. 디지털 기기를 기계적 기능과 편리로만 소비하던 때는 실용적 소비였다. 자신에게 필요한 기능을 얻기 위해 디지털 기기를 소비하였기에 필요한 사람들만 소비하게 된다.
그런데 디지털 기기가 하나의 패션상품처럼 취급되고, 디자인 소비 상품으로 부각되면서 실용적 소비에서 감성적 소비의 영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여성들이 IT기기의 소비자로 대거 진입하게 된 것도 이런 이동 현상에서 비롯된 일이라 할 수 있다. 디자인은 디지털기기를 기계로서의 소비가 아닌, 패션상품처럼 유행에 뒤처지지 않고 빨리 소비하도록 만들어내는 힘을 가진다.
꾸준히 소비하기보다 빨리 집중적으로 소비하고 다름의 또다른 유행을 소비하는 것이다. 결국 디자인은 소비자에게 더 많은 소비를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디자인은 식품에도 적용된다. 음식은 맛으로 먹고, 멋으로 또 한번 더 먹는다고 하듯이 원래부터 음식문화와 디자인은 연관성이 있었다. 하지만 식품산업에서는 그 연관성이 다소 제약되었었다. 주로 포장용기 디자인에만 치우쳤을 뿐이었다. 그런데 디자인노믹스 시대를 맞아 식품업계의 디자인 투자는 더 확장되고 있다.
삼양사는 설탕에 여러 가지 색을 가미한‘큐원 플라워 슈가’를 출시했다. 플라워 슈가는 치자에서 추출한 천연색소를 사용해 다양한 색깔의 꽃잎을 연상케 하는 제품이다. 설탕에 다양한 문양이나 색을 입힌 제품은 백화점 수입식품 코너에 가야 볼 수 있을 정도로 국내업체에서는 생산되지 않던 제품이었다.
오리온의 과자‘이구동성’은 피자 한 판 모양을 지름 3.7㎝의 과자에 그대로 옮겨놓은 제품이다. 이구동성은 비스킷 위에 토마토소스, 카망베르 치즈, 파마산 치즈 등을 올려 피자맛을 그대로 재현한 제품으로 오리온은 이 제품 디자인을 특허청에 출원하기도 했다. 출시 이후 월 평균 2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였다.
식품뿐만 아니라 담는 용기에도 디자인 바람이 불고 있다. CJ의 된장찌개 양념‘다담’은 장독대에서 디자인을 고안했고, 마시는 식초‘미초’는 상의는 짧고 하의는 긴 하이 웨이스트 원피스 모양을 병 디자인에 접목시켰다. 예쁜 용기가 제품을 선택하게 만들기도 하는 셈인데, 심지어 껍데기가 알맹이보다 더 직접적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힘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