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속에서 빛나는 장수 브랜드
대홍커뮤니케이션, 2008년, 11-12월, 199호 기사입력 2009.02.04 01:03 조회 12552


변덕스러운 소비자,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시장, 소위 터뷸런트하게 변화하고 있는 경영환경 속에서 하루에도 수 백 가지의 새로운 브랜드가 출시되고 사라진다. 몇몇 브랜드들은 소비자들이 그 브랜드가 있었는지조차 모른 채 사라지기도 하지만, 어떤 브랜드들은 소비자의 기억 속에 자리잡아 오랫동안 사랑 받으며 장수 브랜드로 살아남는다.

장수 브랜드들 역시 위기 상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장수 브랜드들은 그들이 직면한 위기를 슬기롭게 해결해왔으며, 오히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소비자의 신뢰를 얻은 경우도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장수 브랜드들의 ‘위기 극복기’는 브랜드의 신뢰도를 유지하고, 구축하고자 하는 브랜드 매니저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특히 요즘 식품업계는 멜라민 파동, 건강 및 위생 사고 등의 악재에 시달리고 있어 브랜드 관리 및 장수 브랜드 육성이 더욱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국내외 장수 브랜드인 ‘코카콜라’와 ‘새우깡’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위기를 극복하는 전략을 알아보고, 장수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브랜드 강화 전략을 살펴보자.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광고 문구 처럼 브랜드 역시 사랑을 먹고 산다. 넘쳐나는 브랜드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브랜드나 장수 브랜드가 유독 적은 우리나라에서 장수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기업이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지 알아보자.

사례 1 ‘뉴코크’ 론칭 실패 사례를 통해 본 브랜드 자산



1984년 코카콜라의 간부들은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회사는 가파른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코카콜라는 콜라시장에서 1위의 자리를 위협받고 있었다. 반면 펩시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코카콜라는 광고비를 늘렸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펩시는 콜라시장에서 2위 자리에 걸맞게 ‘펩시 첼린지(Pepsi challenge)’라는 광고를 내보내고 있었다. 펩시의 시장점유율은 곧 8%나 증가했다. 문제는 펩시의 도전이 단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 펩시는 진짜 콜라를 구분하는 ‘펩시 첼렌지’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여기에 참가한 사람들 대부분이 달콤한 펩시 맛에 손을 들어주었다. 다급해진 코카콜라는 맛을 새로 보강한 뉴코크(New coke)를 출시했다. 그리고 며칠 뒤인 1985년 4월 23일, 99년간 고수해온 전통 콜라의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뉴코크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아주 냉담했다. 소비자들은 기존의 코카콜라를 더 이상 구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무려 78일 동안 코카콜라는 소비자들로부터 40만 통의 항의 전화와 편지를 받았고 결국 1985년 7월 11일, 원조 코카콜라를 재발매하게 되었다.

소비자 맛 테스트에서는 단연 뉴코크가 압승이었지만, 코카콜라는 ‘클래식 코크’에 대한 소비자의 감성, 즉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변치 않는 깊은 애착(attachment)을 간과함으로써 스스로 엄청난 재앙을 불러온 것이었다.

사람들이 느끼는 맛은 사실상 미각 세포에 의해 두뇌에 입력되는 ‘생물학적 맛’이 아닌 브랜드와 함께 경험하며 만들어진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적 맛’이다. 코카콜라는 소비자들에게 열 살 때 있었던 잊지 못할 생일파티의 추억은 물론, 정겨운 학창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풋사랑의 어수룩함과 첫키스의 짜릿함을 동시에 떠올리게 만드는 강력한 ‘인출 단서(retrieval clue)’로서의 역할을 한 것이다.

사례 2 농심 새우깡 생쥐 머리 발견사건



2008년 3월, 농심 새우깡에서 생쥐 머리로 여겨지는 물질이 나와 뉴스와 인터넷에서 크게 이슈화됐다. 노래방 새우깡 판매 중단에 이어 새우깡 전체 생산 중단까지 이르렀다.

농심은 3, 4월 광고 비용을 1/10으로 줄여 집행했고, 지난 4월부터 ‘고객 안심 프로젝트’라는 타이틀 하에 PR성 커뮤니케이션 시행했다. 그러나 농심 새우깡의 회수율이 7%에 그쳤다는 기사가 보도되면서 소비자들의 실망이 더욱 커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는 그저 소비자의 망각에만 의존한 농심의 소극적 커뮤니케이션 방법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사건으로 농심 외에 다른 제과 및 음료 업체에까지 불똥이 떨어졌으며 설상가상으로 연이어 발생한 중국산 멜라민 분유 파동으로 제과업계 전반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뉴코크와 새우깡의 사례를 통해 현재 식품업계가 겪고 있는 위기 극복 해법을 찾아보자.



기업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는 일종의 연상 유추 전략(associative inference)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연구에 따르면 장기 기억은 서로 관련된 매듭(node)으로 얽혀진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한다. 개별 아이디어를 하나의 매듭이라고 하면, 이들 매듭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 끼리는 가깝게, 느슨한 관계의 매듭은 몇 단계에 걸쳐 연결되어 있다.¹ 과거 맥도날드 햄버거의 고기가 벌레를 뭉쳐서 만드는 것이라는 악성 루머가 떠돈 적이 있다. 매출이 30% 급락하자, 맥도날드는 루머를 부정하는 전략을 취했다. “100% 순수 고기를 사용한다. 그리고 고기는 1달러인데 벌레는 5~8달러 이기에 ‘벌레를 모아서 만드는 것이 지금 방식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든다’”라는 커뮤니케이션을 전개했다. 하지만 이러한 반박 전략은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매출은 계속 급감하고, 문의전화는 빗발쳤다.

이때 소비자가 햄버거를 보며 ‘벌레’를 떠올리지 않도록, 맥도날드의 다른 긍정적인 매듭을 더욱 활성화하는 전략을 사용했다면 문제 해결이 더 쉬웠을 것이다. 이러한 맥도날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반박 전략으로 부정적 연상에 대한 매듭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부정적 연상을 단절하고 긍정적인 연상을 강하게 하는 전략이 더 효과적이다. 





최근 ‘새우깡 생쥐머리’ 발견 사건은 ‘의도하지 않은’ 그리고 ‘내부의 고의적이지 않은’ 작업 현장의 기술적인 실수라는 부분에서 사고(accident)에 해당된다. 사고의 경우 결함을 솔직하게 시인해 고객의 신뢰를 신속하게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농심이 선택한 위기 관리 정책은 아쉽게도 ‘소비자의 망각’에 의존하는 소극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이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소비자는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새우깡과 관련한 사건을 잊게 되겠지만 그 위기를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극복하고자 노력했다면 그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특히, 농심 새우깡은 30년 넘게 소비자의 사랑을 받아온 한국의 장수 브랜드 중 하나이므로, 장수 브랜드만의 특성을 활용했다면 위기 극복이 더 수월했을 것이다. 장수 브랜드는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애착(attachment)이 다른 브랜드보다 더 크므로 위기에 직면했을 때 소비자의 장기 기억 속에 묻혀 있는 정보를 끄집어내 단기 기억에 띄우는 활성화 정책(proactive associate inference)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래된 브랜드일수록 소비자와의 밀월 기간이 더 길다. 향수 마케팅을 통해 브랜드의 애착도(attachment)를 자극하는 적극적 커뮤니케이션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정보의 합을 통해 브랜드를 맛본다. 브랜드를 상징화하고, 차별화하는 구성 요소로는 브랜드 네임, 로고, 심볼, 슬로건, 징글, 패키지, 디자인, 캐릭터 등이 있다.

코카콜라의 ‘빨간 컬러와 로고’, 음식점에서만 맛볼 수 있는 ‘클래식 코크’ 병, 칠성사이다의 ‘깨끗함’, 롯데삼강 ‘빠삐코’의 박수동 화백의 만화 ‘고인돌’ 캐릭터 등은 오랜 세월 동안 변하지 않고, 소비자 곁을 지켰다.

이 모든 것들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소비자에게 브랜드에 대한 호감을 선사해 차별적인 브랜드 연상 형성을 돕는다.

이러한 차별적인 기억의 장치들을 일관성 있게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소비자들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가치를 갖는 것들을 보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수 브랜드들의 경우, 제품이 쇠퇴기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다양한 마케팅 활동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활동으로는 품질을 향상시키는 방법과 브랜드 구성 요소에 변화를 줘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하거나, 브랜드를 리포지셔닝하는 방법이 있다. 브랜드 리포지셔닝 전략은 성공 확률이 낮고, 과대한 마케팅 비용이 든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기존의 컨셉트보다 확실한 차별적 우위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최근에는 적은 비용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하고, 소비자가 수요와 미디어를 재생산할 수 있는 방법으로 UCC를 활용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다양한 형태의 소비자를 확보하고, 진부해진 브랜드와 소비자의 관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인터넷 등의 뉴미디어를 전통적 방식의 광고와 연계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7월 22일 인터넷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에 한 네티즌이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배경음악²과 1988년 시작된 롯데삼강 빙과류 ‘빠삐코’ TV CM송을 합성해 만든 ‘빠삐놈’ 동영상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UCC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빠삐코의 매출도 증가했으며, 주 고객도 20~30대로 확산되었다. ‘빠삐놈’의 독특한 노래와 ‘고인돌’ 캐릭터는 추억에 얽힌 빠삐코를 연상하고, 브랜드 로열티를 증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10월 14일 세계지식포럼에서 세계적 경영대학원인 인시아드(INSIAD)의 나라얀 판트 최고 경영자 과정 학장은 ‘나쁜 습관’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자본 조달이 어렵지 않던 시기, 다양한 아이디어를 개발해 전 세계 시장에 진출하려던 시도는 이제 ‘나쁜 습관’이다. 지금은이 나쁜 습관을 다 잊어야 하며, 기업이 자사 포트폴리오를 간추려 진짜 돈 되는 사업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때이다.”

미국발 신용경색으로 시작된 글로벌 경기 침체로 최근 유동성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요즘 같은 시절에는 소비자의 주목을 끌기 위한 새로운 브랜드 창출 전략보다는 시장에서 신뢰와 지지를 얻고 있는 브랜드를 장수 브랜드로 키우는 방법이 아마도 나라얀 판트가 말하는 선택과 집중이 아닐까 생각한다.

위기의 순간에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취할 것인가? 그리고 브랜드 노화를 방지하고, 고객의 입맛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한의 소비자 도전에 맞서 싸워 이기는 브랜드 혁신이야 말로, 브랜드가 과거나 현재, 그리고 십 수년이 지나서도 사랑 받는 비결일 것이다.

최숙희(브랜드마케팅연구소 선임연구원)
빠삐놈 ·  코카콜라 ·  위기상황 ·  기업 ·  새우깡 ·  농심 ·  일관성 ·  연상작용 ·  공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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