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커뮤니케이션, 즉 건강과 관련된 소통의 문제가 PR, 광고, 마케팅 등 커뮤니케이션 현장에서는 물론이고 의약계, 학계에서도 핵심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불과 5~6년 전만해도 용어마저 생소했던‘헬스 커뮤니케이션’이 이토록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 | 김동석 더 커뮤니케이션즈 엔자임 대표
의학이라는 분야만큼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한 곳도 드물다. 어려운 의학용어는 차치하고라도‘선고’‘통보’등의 일방적인 용어에서 느낄 수 있듯이‘정보의 독점 현상’으로 인해 의료는 그 동안 권위의 대명사처럼 여겨졌었다. 하지만, 정보의 공유를 속성으로 하는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등의 출연으로 의료도 헬스2.0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게 됐다. 소위‘똑똑한 환자(Smart Patient)’들이 출연하면서 의료분야에 커뮤니케이션의 대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헬스2.0 서비스는 ‘똑똑한 환자’의 양산에 그치지 않고, ‘행동하는 환자’라는 새로운 현상을 촉발 시키고 있다.
헬스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심은‘공공재’로서의 의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적용됐던 정부의 강력한 규제들이 최근 서비스 상품으로서의 의료가 또 다른 축으로 인식되면서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동안 헬스 커뮤니케이션은 PR영역에서 대부분 주도해왔다.
‘신뢰’와‘관계’라는 PR이 갖는 가장 큰 가치가 의료 소비자의 요구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고 있다. 규제대상이었던 의료의 공중파 TV광고가 조만간 허용될 예정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모션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전문의약품 정보도 인터넷 전문지 및 포털 사이트 등을 통해 정보가 넘쳐나고 있는 현실이어서 향후 심도 깊은 논의의 과정을 거쳐 제안적이나마 전문의약품 광고가 일부 허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헬스 커뮤니케이션의 범위역시 전문의료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식품, IT, 의복, 게임 등 건강과 연관된 모든 생활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이제 헬스 커뮤니케이션은 PR, 광고, 마케팅 등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의 구분은 물론이고, 전통의료 분야와 생활건강 분야의 경계까지 허물어지면서 그야말로 상호 소통의 진정한 통합된 헬스 커뮤니케이션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본 원고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헬스 커뮤니케이션 분야 중 환자, 의사, 업계(제약사, 병원) 등 헬스케어를 둘러싸고 있는 핵심적인 공중을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장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환자 - ‘똑똑한 환자’를 넘어 ‘행동하는 환자’로 변신하다
헬스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은 환자다. 이들 환자들이 점점 똑똑해지고 있다. 의료정보의 독점이라는 견고했던 뚝이 무너지면서 생긴 의료계의 트랜드 중 하나다. 기존의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헬스1.0과 소셜미디어로 대표되는 e-patient 중심의 헬스2.0이 함께 빚어낸 현상이다. 이들 개개의 똑똑한 환자들은 다시‘환우회’라는 조직을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힘을 강화해가고 있다.
유방암 환우회의 경우 전국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환자간의 정보교류는 물론이고 유방암 예방 캠페인의 중심축으로 대중과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 중이다. 환자의 권익을 대변하고 불합리한 제도 자체를 바꿔나가는 능동적 환우회도 많다.
간사랑동우회(www.liverkorea.org)는 간염환자의 차별 철폐를 위해 모인 작은 온라인 모임에서 시작해 간 관련 질환 환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환우의 대변인이 되고 있다. 국회, 정부기관, 언론사 등에 간 관련 질환자의 차별 철폐를 요구하고 간담회, 메일링 등을 통해 자신들의 권익을 도모한다.
헬스2.0 방식을 통해 환자들의 힘을 강화시키는 커뮤니케이션 모델을 비즈니스화한 사례도 있다. 비타민 MD(www.vitaminmd.org)는 환우들이 직접 전문의약품을 포함한 의약품의 사용 후기를 올려 의약품을 평가할 수 있는 사이트다. 부작용 정보 등과 처방순위 등이 그대로 노출된다. 환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생생한 환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폐쇄적이던 의약품 정보를 상호 교환하는 장이 되고 있다. 이는 향후 의료기관은 물론이고, 의사들까지 환자의 평가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환자주권시대’를 이끌 변화의 주역으로 주목 받고 있다.
헬스 커뮤니케이션은 환자들의 치료와 재활에도 적극 응용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공모전을 통해 ‘소아암 환자를 위한 기능성 게임’을 개발했다. 게임을 즐기며 자연스럽게 질병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은 물론 치료과정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되고 있다.
세브란스 어린이병원학교는 병 치료가 끝난 소아암 아동들의 학교생활을 돕기 위한‘학교복귀 및 적응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교육용 책자, 비디오와 소아암 아동의 개별·집단 전문상담 요령, 부모 및 교사들을 위한 워크숍, 또래 친구 교육 프로그램 등 일종의 소아암 어린이 환자의 학교복귀를 위한 헬스 커뮤니케이션 패키지인 셈이다. 이렇듯 헬스 커뮤니케이션은 능동적인 참여형 환자의 양산은 물론이고, 환자의 재활과 치료에 있어 커뮤니케이션 방법론을 제시하며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다.
의사 - 헬스 커뮤니케이션에 눈뜨다
명의의 개념도 변하고 있다. 치료기술은 물론이고 환자와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할 것인지, 또는 병원 내 조직 간의 커뮤니케이션,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 등‘닥터 커뮤니케이터(Dr.Communicator)’가 되지 않고는 명의로 대접받기 힘든 시대가 오고 있다.
이런 시대적 상황을 반영해 의사들이 헬스 커뮤니케이션 변화의 주역으로 부상 중이다. 네이버는 서울대학병원, 대한의사협회 등과 함께 의료상담 코너를 개설해 비록 초보적인 수준의 소통이기는 하지만 의사들의 참여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병원장 등 의료진들이 블로그를 통해 공중과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전개하는 사례들도 크게 늘고 있다. 헬스로그(www.koreahealthlog.com)는 향후 의사들이 헬스 커뮤니케이션, 특히 헬스2.0 세상에서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할지를 가늠하게 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2007년 블로그로 시작해 헬스2.0을 실현하기 위한 실험적 벤처를 표방하고 있는 헬스로그는 의사들의 블로그 등을 연계 시킨의료 소셜 네트워크로 각종 의료계 이슈에 대해 정통 매체에서는 손댈 수 없는 의사들의 심도 깊고 새로운 관점의 해석과 솔직한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어 커뮤니케이션 관계자들은 물론 의료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의사들의 참여는 최근 몇 년 동안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대국민 질병인식 캠페인을 통해서도 활발히 전개돼 왔다. 대형 헬스 캠페인만 1년에 20여 개에 달할 정도다. 천식, 알레르기 비염 등의 경우 학회 의료진들이 직접 TV광고에 출연해 캠페인에 참여하기도 했다.
남성 유방암 전문의들이 직접 나서서 유방암 예방과 치료에 있어 남성들의 참여와 배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대한유방암학회의‘핑크타이 캠페인’은 성공 PR캠페인으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대한류마티스학회가 매년 진행하는 여성류마티스환자를 위한‘여류사랑 캠페인’역시 여성 류마티스 환자의 조기진단과 치료기회 확대를 목적으로 전개돼 관련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을 이끌어 내는 등 성과가 뒷받침된 좋은 사례다.
캠페인의 방법 역시 진화해 정통 언론에만 의지하던 캠페인은 웹과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개원의사회에서 싸이월드와 연계해 진행한‘독감백신 무료접종 캠페인’은 학회의 공익활동을 통해 백신접종의 중요성을 인식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이처럼 의사들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이해와 참여가 높아지면서 헬스케어 전문 PR 컨설팅회사에서는 대국민 캠페인은 물론이고, 의사를 대상으로 한 헬스 커뮤니케이션 교육 및 코칭 프로그램을 개발해 주요 사업영역화하고 있다.
업계 - 병원, 헬스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시도의 중심에 서다
국내에 의료서비스라는 인식이 거의 없었던 1990년대 중반, 환자중심의 병원을 표방하며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 등이 진료, 입원, 수술, 치료 전 과정과 장례식에 이르기까지 환자 및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들 병원은 활발한 PR활동을 통해 공중과의 의료정보를 공유하는 노력도 아끼지 않으며 국내 헬스 커뮤니케이션의 태동을 알렸다.
2000년 의약분업 이후에는 다국적 제약사의 선진화된 헬스 커뮤니케이션 기법들이 현장을 지배하며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당시 비만이 질병으로 인식되기 전 세계 최초의 비만치료제를 국내에 소개하며 의료단체와 함께 진행했던 비만 예방 캠페인은 업계의 신선한 충격과 논쟁거리를 남기기도 했다.
이후 다국적 제약사를 중심으로 마케팅과 결합된 환자 교육, 메디칼 에듀케이션, 대정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활용한 질병 정보 공유 등 다양한 헬스 커뮤니케이션이 시도됐다. 특히 약화사고, 의약품가격이슈, NGO단체와의 갈등 등이 발생하면서 제약분야에 있어 이슈위기 관리는 헬스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하지만 의약품과 관련된 정부의 강력한 규제조치는 제약사 중심의 헬스 커뮤니케이션의 발달에 일정 부분 정체를 가져왔고, 최근에는 헬스2.0 등 헬스 커뮤니케이션의‘새로운 시도’라는 면에서만 본다면 병원을 중심으로 커뮤니케이션의 주도권이 옮겨가는 양상이다. 미국 병원들은 이미 대표적인 소셜 미디어인 유튜브와 트위터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헬스2.0의 바다에서 항해를 시작했다.
싱가포르와 함께 의료관광의 메카로 떠오른 태국의 유명병원들도 국제PR의 수단으로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자체 생산한 병원 정보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등 바뀐 미디어 환경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국내에도 이런 사례가 없지는 않지만 아직 미국 등에 비교해서는 걸음마 단계다. 국내에서는 예치과, 함소아한의원, 자생한방병원, 연세사랑병원 등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나름대로 브랜드를 구축한 성공 사례들이다.
특히 최근 자생한방병원의 다양한 시도는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유명 스포츠 스타를 활용해 전문병원으로는 드물게 고등학생, 직장인의 척추건강과 관련된 사회공헌 형태의 공익캠페인을 매년 새롭게 론치하며 환자와 예비환자들을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고 있다. 온라인에서도 블로그와 환자체험 동영상 등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고, 의료진의 저술활동을 통한 오프라인 커뮤니케이션도 주목의 대상이다.
관절전문병원 연세사랑병원 역시 어려운 관절 수술정보를 메디컬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해 동영상, 만화로 손쉽게 알려주는 등 헬스 케어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이 밖에도 일선 병원에서 진행되는 성형, 노화, 수술, 약제 등에 대한 온라인 가상체험 서비스나 환자대상의 다양한 프로모션은 마케팅과 혼용되어 정체성이 모호한 경우도 없지 않지만 환자와의 접점 확대라는 면에서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국내 헬스 커뮤니케이션은 학문적으로나 실행 면에서도 아직 시작단계에 와있다. 그 만큼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업계, 정부, 학계 모두 어느 정도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시행착오를 줄이려면 이론적 틀과 실무가 연계돼‘건강을 위한 건강한 소통’이라는 헬스 커뮤니케이션이 갖는 공익적 가치를 함께 실현해 가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