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것들이 생겼다 없어지기를 반복하는 요즘.
얼리어답터는커녕 트렌드를 따라가기 바쁜 우리들. 광고인이라면 트렌드를 창조하고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유행하는 아이폰 어플들도 여러 개 다운받아보고, 트위터에 가입해 앞서가는 사람들을 팔로우 해보지만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은 여전히 버겁다.
최근 속도에 내몰리는 현대인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안정감을 주는 음료 광고들이 있다. 모두에게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받는 야쿠르트, 오란씨, 칠성사이다가 바로 그것이다.
올해 ‘손에서 손으로 건강을 전합니다’라는 기업PR로 기업과 제품 이미지를 동시에 끌어올린 건강장수식품 ‘야쿠르트’, 최근 신인 김지원 씨를 광고 모델로 선정하고 20년 만에 TV광고를 재개한 동아오츠카 ‘오란씨’, 그리고 올해 발매 60주년으로 환갑을 맞으며 국민 브랜드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롯데칠성음료 ‘칠성사이다’는 일관성 있게 캠페인을 관리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번 캠페인 히스토리에서는 이들의 광고캠페인 히스토리에 대해 알아보고 꾸준히 사랑받는 비결을 들어보았다.
글 | 김기홍 한국야쿠르트 홍보팀 과장
창업 초창기 한국야쿠르트는 야쿠르트라는 제품의 과학성을 소비자들에게 알리기 위한 광고,홍보 전략을 펼쳤다. 주로 유산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장내 미생물과 유산균과의 관계 등 야쿠르트의 효능에 대한 설명이 중심이었다. 1970년대 초, 당시 인기가수 하춘화씨의 ‘야쿠르트를 마시자’란 CM Song이 전파를 탔다.
“야쿠르트를 마시자. 젊음이 넘치는. 야쿠르트 마시면 기쁨이 와요~”
지금 보면 단순한 가사 구조였지만, 한국야쿠르트가 추구하는 활력과 건강이 넘치는 사회 구현이라는 철학을 명확하게 담고 있었다. 이에 뒤이어 타 회사에서도 유행처럼 CM Song을 만들어내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이때부터 대한민국의 광고 역사와 함께 해왔다고 할 수 있는 한국야쿠르트 기업이미지 광고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978년, 한 흑백영상이 TV를 통해 방영된다. 빠른 경제적 성장기에 진입하면서 자연환경의 피해는 어쩔 수 없었다. 가난한 나라를 극복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한국야쿠르트의 기업이미지 광고가 잔잔한 파문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자연보호를 소재로 한 ‘해인사’편이다. 광고는 그 해 문화방송과 경향신문 광고대상에서 동상을 수상하였고, ‘갈매기섬’등 후속 편을 통해 잊고 있었던 자연보호의 소중함을 계속 알려나가기 시작하였다.
요즘에야 모든 기업들이 자연환경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고, 그 중요성을 기반으로 하는 녹색산업이 미래의 첨단산업으로 각광받을 만큼 보편화된 개념이지만, 당시만 해도 낯선 개념이었다. 그 광고캠페인으로 ‘자연보호’하면 한국야쿠르트를 떠올릴 만큼 선도적이고 혁신적인 기업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고, 또한 한국야쿠르트의 관심사가 고객의 건강을 넘어서서 공동체사회와 자연환경의 건강함까지 앞서 생각하는 기업임을 고객들에게 알려낸 계기가 되었다.
1980년대에 이르러 액상요구르트의 대중화로 인해, 건강기업으로의 확고한 이미지를 차지한 한국야쿠르트는 경쟁사들이 적극적으로 상품광고에 집중하는 모습과는 다른 방법으로 차별화를 시도한다. 바로 1982년부터 기획한 ‘장수마을’ 캠페인으로 충북 괴산군 삼송리 장수마을, 강원도 달구마을, 담양 죽세공마을, 안동 화회마을 등 수많은 장수촌을 소재로 하여 그냥 ‘오래 장수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이 한국야쿠르트의 비전임을 자연스럽게 공감시켜 나갔다.
“대대로 장수하는 마을, 야쿠르트가 꿈꾸는 곳입니다”라는 명카피가 바로 여기에서 탄생하였다. 이 연작시리즈 캠페인은 그 영역을 세계로 넓혀 세계적인 장수마을인 ‘코카서스 장수촌’까지 소개하기도 하였고, 건강기업의 이미지와 제품을 자연스럽게 연관시킨 기업광고의 수작으로 평가 받는다.
장수마을 광고시리즈는 미국 CLIO광고상, 런던 인터내셔널 광고상에 입상되었고, 또한 1983년 12월 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주최하는 광고대상 콘테스트에서 ‘썰매마을’편이 우수상을 차지하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 캠페인은 단순히 제품을 팔기 위한 광고가 아닌 기업의 철학을 제품과 연결시켜 고객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얻어냈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기업과 브랜드의 가치를 높여나갔다. 이러한 시도는 2000년대에 들어서서야 광고커뮤니케이션 업계의 큰 화두가 되었던 것이었으나, 한국야쿠르트는 그보다 20여 년을 앞서 실행할 정도로 선도적인 기업으로 평가되었다.
기업광고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일관성이다. 기업이 가진 철학과 이념이 장시간 고객들의 공감을 유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마음을 열고 기업과 제품에 대한 호의적인 감성을 갖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야쿠르트의 광고캠페인은 나름 성공적인 길을 걸어왔다고 자평 할 수 있다.
한국야쿠르트가 가진 기업철학의 핵심은 ‘건강’이다. 흔히들 건강이란 단어에서는 육체적인 튼튼함이나 활기참만을 연상하게 되지만, 한국야쿠르트가 추구하는 ‘건강’의 의미는 그보다 훨씬 더 광의의 개념이다. 한국야쿠르트의 ‘건강’은 고객의 건강에서 출발하여, 기업경영과 문화의 건강함, 더 나아가 지역사회와 국가 전체의 건강함까지 함께 고려하고 있다.
고도성장의 시기에 자연보호, 공익사업, 장수마을시리즈를 거치면서 공익적이고 국민건강에 대한 사명감을 전달하는 데 주력해왔던 한국야쿠르트는 또한 때로는 야쿠르트 아줌마를 광고모델로 활용하면서 지역공동체와 함께하는 ‘친근한 이웃’으로의 기업이미지도 함께 강조해왔다. 매일 아침 내 가족의 건강을 위해 함께 하며, 기업과 고객을 감성적인 공감대로 엮는 야쿠르트 아줌마의 이미지는 한국야쿠르트의 업의 핵심이자 가장 중요한 마케팅 전략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단순히 생활인으로서의 야쿠르트 아줌마가 아니라 지역과 사회공동체에 공헌하는 건강한 ‘직업인’으로서의 이미지 구축을 통해 한국야쿠르트가 추구하는 기업이념이 고객들에게 하나하나 제품과 함께 전달되도록 하는 것 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2007년에 시도된 ‘나눔은 건강입니다’편은 한국야쿠르트가 추구하는 ‘건강사회구현’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였다.
한국야쿠르트의 ‘건강’이 결국 ‘마음의 여유와 풍요’를 포함한 큰 철학임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여주고 그를 통해 야쿠르트 아줌마의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건강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시도였다.
첫 번째 시리즈에서 사회공헌활동을 벌이는 실제적인 야쿠르트 아줌마의 모습을 진솔하게 담으면서, 잔잔한 감동을 함께 전달하였다면, 다음해의 후속 편에서는 활발한 사회기부, 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는 빅모델 ‘김장훈’씨를 기용하여, 나눔을 통해 더 즐겁고 건강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었다.
‘건강’의 가치에 대한 Newness를 전달할 수 있으면서, 아울러 한국야쿠르트의 업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전달시스템에 대한 가치부여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캠페인 전략을 수립한 것이 2010년 초 집행한 ‘손에서 손으로’편이다.
여러 차례에 걸친 전략회의 끝에 캠페인의 목표를 한국야쿠르트가 추구하는 건강가치를 고객과의 감성적 공감대를 통해 새롭게 재인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으로 정했다. 또한 제품 전달시스템을 재해석 함으로써 고객들의 야쿠르트 아줌마에 대한 인식 변화를 또 하나의 목표로 설정하였다.
전체적인 제작 방향은 수많은 아이디어 회의 끝에 “손에서 손으로 건강을 전달한다”는 업의 본질적인 측면에 충실한 쪽으로 설정되었고, 야쿠르트 아줌마가 전달하는 것은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고객의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며, 고객들도 역시 말로 전하는 마음보다 손과 손을 맞잡았을 때 오히려 더 많은 말과 큰 정서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음을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한국야쿠르트가 추구하는 ‘건강’은 ‘마음’까지 더한 더 큰 의미를 지닌 것이며, 이런 가치가 자연스럽게 야쿠르트 아줌마에게 전이 되도록 의도하였다. 지난 40여 년간 고집스럽게 ‘건강’을 위해 달려온 한국야쿠르트 이기에 할 수 있고, 또한 앞으로 한결같이 그 ‘건강’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에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세상 많은 것이 변화하고 또 사람들은 반짝이는 새로움에 잠시 잠깐 현혹되기도 하겠지만 건강한 삶과 건강한 지역사회, 그리고 건강한 기업에 대한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변함없는 한국야쿠르트의 모습에서 위안과 편안함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우리가 추구하는 ‘건강’이 가진 가치의 큰 부분일 테니 말이다.
40 여년 동안 한국야쿠르트가 꿋꿋이 지탱해 올 수 있었던 데에는 ‘건강’에 대한 남다른 기업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 아침에도 한국야쿠르트를 만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감동과 사랑과 마음을 느끼게 하는 것, 그리고 그 ‘건강’한 마음이 사회를 더 밝고 활기차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바로 그것이 한국야쿠르트의 ‘건강’이다.
“야쿠르트를 마시자. 젊음이 넘치는. 야쿠르트 마시면 기쁨이 와요~”
지금 보면 단순한 가사 구조였지만, 한국야쿠르트가 추구하는 활력과 건강이 넘치는 사회 구현이라는 철학을 명확하게 담고 있었다. 이에 뒤이어 타 회사에서도 유행처럼 CM Song을 만들어내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이때부터 대한민국의 광고 역사와 함께 해왔다고 할 수 있는 한국야쿠르트 기업이미지 광고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978년, 한 흑백영상이 TV를 통해 방영된다. 빠른 경제적 성장기에 진입하면서 자연환경의 피해는 어쩔 수 없었다. 가난한 나라를 극복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한국야쿠르트의 기업이미지 광고가 잔잔한 파문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자연보호를 소재로 한 ‘해인사’편이다. 광고는 그 해 문화방송과 경향신문 광고대상에서 동상을 수상하였고, ‘갈매기섬’등 후속 편을 통해 잊고 있었던 자연보호의 소중함을 계속 알려나가기 시작하였다.
요즘에야 모든 기업들이 자연환경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고, 그 중요성을 기반으로 하는 녹색산업이 미래의 첨단산업으로 각광받을 만큼 보편화된 개념이지만, 당시만 해도 낯선 개념이었다. 그 광고캠페인으로 ‘자연보호’하면 한국야쿠르트를 떠올릴 만큼 선도적이고 혁신적인 기업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고, 또한 한국야쿠르트의 관심사가 고객의 건강을 넘어서서 공동체사회와 자연환경의 건강함까지 앞서 생각하는 기업임을 고객들에게 알려낸 계기가 되었다.
1980년대에 이르러 액상요구르트의 대중화로 인해, 건강기업으로의 확고한 이미지를 차지한 한국야쿠르트는 경쟁사들이 적극적으로 상품광고에 집중하는 모습과는 다른 방법으로 차별화를 시도한다. 바로 1982년부터 기획한 ‘장수마을’ 캠페인으로 충북 괴산군 삼송리 장수마을, 강원도 달구마을, 담양 죽세공마을, 안동 화회마을 등 수많은 장수촌을 소재로 하여 그냥 ‘오래 장수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이 한국야쿠르트의 비전임을 자연스럽게 공감시켜 나갔다.
“대대로 장수하는 마을, 야쿠르트가 꿈꾸는 곳입니다”라는 명카피가 바로 여기에서 탄생하였다. 이 연작시리즈 캠페인은 그 영역을 세계로 넓혀 세계적인 장수마을인 ‘코카서스 장수촌’까지 소개하기도 하였고, 건강기업의 이미지와 제품을 자연스럽게 연관시킨 기업광고의 수작으로 평가 받는다.
장수마을 광고시리즈는 미국 CLIO광고상, 런던 인터내셔널 광고상에 입상되었고, 또한 1983년 12월 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주최하는 광고대상 콘테스트에서 ‘썰매마을’편이 우수상을 차지하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 캠페인은 단순히 제품을 팔기 위한 광고가 아닌 기업의 철학을 제품과 연결시켜 고객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얻어냈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기업과 브랜드의 가치를 높여나갔다. 이러한 시도는 2000년대에 들어서서야 광고커뮤니케이션 업계의 큰 화두가 되었던 것이었으나, 한국야쿠르트는 그보다 20여 년을 앞서 실행할 정도로 선도적인 기업으로 평가되었다.
기업광고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일관성이다. 기업이 가진 철학과 이념이 장시간 고객들의 공감을 유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마음을 열고 기업과 제품에 대한 호의적인 감성을 갖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야쿠르트의 광고캠페인은 나름 성공적인 길을 걸어왔다고 자평 할 수 있다.
한국야쿠르트가 가진 기업철학의 핵심은 ‘건강’이다. 흔히들 건강이란 단어에서는 육체적인 튼튼함이나 활기참만을 연상하게 되지만, 한국야쿠르트가 추구하는 ‘건강’의 의미는 그보다 훨씬 더 광의의 개념이다. 한국야쿠르트의 ‘건강’은 고객의 건강에서 출발하여, 기업경영과 문화의 건강함, 더 나아가 지역사회와 국가 전체의 건강함까지 함께 고려하고 있다.
고도성장의 시기에 자연보호, 공익사업, 장수마을시리즈를 거치면서 공익적이고 국민건강에 대한 사명감을 전달하는 데 주력해왔던 한국야쿠르트는 또한 때로는 야쿠르트 아줌마를 광고모델로 활용하면서 지역공동체와 함께하는 ‘친근한 이웃’으로의 기업이미지도 함께 강조해왔다. 매일 아침 내 가족의 건강을 위해 함께 하며, 기업과 고객을 감성적인 공감대로 엮는 야쿠르트 아줌마의 이미지는 한국야쿠르트의 업의 핵심이자 가장 중요한 마케팅 전략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단순히 생활인으로서의 야쿠르트 아줌마가 아니라 지역과 사회공동체에 공헌하는 건강한 ‘직업인’으로서의 이미지 구축을 통해 한국야쿠르트가 추구하는 기업이념이 고객들에게 하나하나 제품과 함께 전달되도록 하는 것 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2007년에 시도된 ‘나눔은 건강입니다’편은 한국야쿠르트가 추구하는 ‘건강사회구현’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였다.
한국야쿠르트의 ‘건강’이 결국 ‘마음의 여유와 풍요’를 포함한 큰 철학임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여주고 그를 통해 야쿠르트 아줌마의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건강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시도였다.
첫 번째 시리즈에서 사회공헌활동을 벌이는 실제적인 야쿠르트 아줌마의 모습을 진솔하게 담으면서, 잔잔한 감동을 함께 전달하였다면, 다음해의 후속 편에서는 활발한 사회기부, 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는 빅모델 ‘김장훈’씨를 기용하여, 나눔을 통해 더 즐겁고 건강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었다.
‘건강’의 가치에 대한 Newness를 전달할 수 있으면서, 아울러 한국야쿠르트의 업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전달시스템에 대한 가치부여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캠페인 전략을 수립한 것이 2010년 초 집행한 ‘손에서 손으로’편이다.
여러 차례에 걸친 전략회의 끝에 캠페인의 목표를 한국야쿠르트가 추구하는 건강가치를 고객과의 감성적 공감대를 통해 새롭게 재인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으로 정했다. 또한 제품 전달시스템을 재해석 함으로써 고객들의 야쿠르트 아줌마에 대한 인식 변화를 또 하나의 목표로 설정하였다.
전체적인 제작 방향은 수많은 아이디어 회의 끝에 “손에서 손으로 건강을 전달한다”는 업의 본질적인 측면에 충실한 쪽으로 설정되었고, 야쿠르트 아줌마가 전달하는 것은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고객의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며, 고객들도 역시 말로 전하는 마음보다 손과 손을 맞잡았을 때 오히려 더 많은 말과 큰 정서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음을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한국야쿠르트가 추구하는 ‘건강’은 ‘마음’까지 더한 더 큰 의미를 지닌 것이며, 이런 가치가 자연스럽게 야쿠르트 아줌마에게 전이 되도록 의도하였다. 지난 40여 년간 고집스럽게 ‘건강’을 위해 달려온 한국야쿠르트 이기에 할 수 있고, 또한 앞으로 한결같이 그 ‘건강’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에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세상 많은 것이 변화하고 또 사람들은 반짝이는 새로움에 잠시 잠깐 현혹되기도 하겠지만 건강한 삶과 건강한 지역사회, 그리고 건강한 기업에 대한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변함없는 한국야쿠르트의 모습에서 위안과 편안함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우리가 추구하는 ‘건강’이 가진 가치의 큰 부분일 테니 말이다.
40 여년 동안 한국야쿠르트가 꿋꿋이 지탱해 올 수 있었던 데에는 ‘건강’에 대한 남다른 기업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 아침에도 한국야쿠르트를 만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감동과 사랑과 마음을 느끼게 하는 것, 그리고 그 ‘건강’한 마음이 사회를 더 밝고 활기차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바로 그것이 한국야쿠르트의 ‘건강’이다.
글 | 공민지 동아오츠카 PR팀 주임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 드려요~♪”
듣기만 해도 추억에 빠져들게 하는 정겨운 CM송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바로 1990년 이후 볼 수 없어 아쉬웠던 청량음료 오란씨의 TV광고가 재개한 것. 20년 만에 부활한 오란씨 히스토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1년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은(현 동아쏘시오그룹 회장) 순수 우리자본과 우리기술만을 이용해 향이 들어있는 탄산음료 즉, 플레이버 음료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짜릿한 탄산 속에 상큼한 과일 맛이 첨가된 청량음료, ‘오란씨’가 그 것이다. 강신호 회장이 직접 네이밍한 브랜드 ‘오란씨’는 오렌지의 독일어인 오랑지(orange)와 비타민C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오렌지의 ‘오렌’이 우리말 ‘오랜’의 느낌을 가져와 차치하고 영어 대신 독일어 ‘오랑지’(orange)를 차용해 발음이 편하도록 ‘오란’으로 바꿔 ‘오란씨’가 탄생된 것이다.
1960년대 후반 다국적기업인 코카콜라사가 한 손에는 콜라를, 다른 한 손에는 환타를 들고 국내 시장에 진출해 탄산음료시장을 평정하던 때 오란씨는 그 틈새시장을 과감히 공략했다. 바로 플레이버(flavor) 음료 시장을 노린 것. 당시 국내에 향을 가진 탄산음료로는 환타 오렌지만 출시된 상황이었다.
같은 오렌지 맛 탄산음료로는 초기 진입브랜드인 환타와 경쟁력이 없다고 판 단한 동아오츠카는(당시 동아제약 식품사업부, 79년 동아식품으로 독립법인 창립, 이후 92년 동아오츠카로 개명) ‘오란씨 파인’, 즉 파인애플 맛 오란씨를 출시하며 승부수를 걸었다. 환타와 다른 맛으로 승부수를 건 ‘오란씨 파인’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이야 바나나, 파인애플 같은 열대과일을 손쉽게 먹을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수입과일은 워낙 고가라 선물이나 병문안 용도로 귀하게 쓰였다. 이런 상황에 음료수 하나로 갈증도 풀고 파인애플 맛까지 느낄 수 있으니 당시 소비자들이 얼마나 행복했을까. 자국민의 성향을 잘 분석한 섬세함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이런 이유로 ‘오란씨 파인’은 인기를 끌었고 오란씨의 브랜드 가치는 점점 치솟기 시작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결정적인 공로자는 바로 ‘오란씨 송’ 이다. 1977년 작사 작곡 윤형주, 부르는 이 이종용.
“하늘에서 달을 따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 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런 눈동자여, 오오오오 오란씨~”
아.. 지금 들어도 얼마나 아름다운 가사에 서정적인 멜로디인가. 이 로고송이 본인 나이보다 더 많아 직접 브라운관을 통해 접하지 못한 요즘 세대들도 멜로디나 그 느낌을 알고 있을 정도로 오란씨 송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이야 어린 친구들에게 “오.오.오.오.”를 들려주면 “빠를 사랑해~”를 바로 흥얼거리지만(소녀시대의 “Oh”), 그 당시만 해도 “오.오.오.오”를 들려주면 남녀노소 누구나 “오란씨~파인~~”이란 멜로디와 가사가 자동으로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오란씨 송’에는 그 인기만큼이나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강신호 회장이 오란씨파인을 개발해 광고에 넣을 CM송을 구상 중일 때, 여러 광고업체에서 동아오츠카(당시 동아식품)를 방문해 그들이 준비해 온 CM송을 제시했다. 몇몇 업체들의 발표가 끝나고 마지막 팀이 남았을 때 한 젊은이가 기타를 들고 강신호 회장 앞에 섰다. 그리고는 기타를 켜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
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런 눈동자여 오오오오 오란씨 오란씨 파~인”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임원들은 모두 말도 안 되는 광고음악이라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실제로 강한 멜로디와 또랑또랑한 성우의 목소리로 제품의 효능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던 70년대 광고의 특성 상 감성적으로 접근해 제품이미지를 묘사한다는 것은 파격이었다. 그것도 노래로. 모든 임원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때, 강신호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 청년을 불러
“이 음악으로 광고를 하면 잘 될 것 같은가”,
“네 회장님”,
“그럼 자네만 믿겠네.”
이 세 마디의 오고감으로 ‘오란씨 송’은 빛을 보게 되었고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소비자의 감성에 호소하며 서정적으로 접근한 오란씨 송. 그가 보여준 것은 단순히 노래가 아닌, 소비자에게 정서적으로 다가가 감성에 호소하는, 지금으로 따지면 감성마케팅 이었던 셈이다. 지금도 오란씨 송을 들을 때 마다 별님이 내려오고 탄산알갱이가 올라가는 그 청량한 광고 컷이 떠오르는 건 아마 강신호 회장의 선견지명과 노래를 부르던 그 청년의 순수함 덕택일 것이다.
지금의 오란씨 송을 있게 한 그 청년은 누굴까. 의대생이었지만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광고음악 작곡의 길로 들어서게 된 그. 심리적 방황도 있었지만 해맑게 노래를 부르던 그 청년은 현재 유명 CM송 작곡가이자 트윈폴리오 원년 멤버였던 가수 윤형주이다. 조금만 흥얼거려도 “아 그 노래!” 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CM송을 작곡한 윤형주씨의 생애 첫 작품이 바로 오란씨이다. 그때 강신호 회장이 그의 노래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오란씨의 운명과 그의 미래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도 같은 생각인지 윤형주씨는 지금도 여전히 그 때 강신호 회장님과의 만남이 “인생의 전환점” 이라고 말한다.
오란씨 송의 엄청난 파괴력만큼, 오란씨 광고모델도 빼놓을 수 없다. 일명 ‘오란씨 걸!’
70년대 영화배우 채령이 1대 모델이 됨을 시작으로 86년부터 88년까지 3년 동안 활동한 김윤희가 두 번째, 90년엔 ‘미스 오란씨’로 선발된 송혜령이 그리고 2010년, 20년 만에 김지원이 ‘오란씨 걸’이 되었다.
오란씨는 처음부터 여성 모델을 기용했다. 오란씨 모델들은 청순미부터 섹시미까지 섭렵해 2,3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세련된 화면을 보여준다. 특히, 80년대 활동을 했던 2대 모델 김윤희는 오란씨의 톡톡 튀고 상큼한 느낌을 잘 표현하며 당대 최고 인기를누렸다.
88세대들은 오란씨 하면 김윤희, 김윤희하면 오란씨를 떠올릴 정도로 김윤희는 많은 인기를 누렸다.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점빵(지금의 슈퍼마켓)에 붙어있는 수영복차림의 김윤희가 등장한 오란씨 포스터 쟁탈전이 벌어질 정도였으니, 당시 그녀의 인기가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1990년대 초반, 동아오츠카(당시, 동아식품)는 ‘미스 오란씨’ 선발대회를 개최했는데 자체브랜드 명을 내건 대회에다 텔레비전 방송까지 내보냈으니 그 당시 오란씨의 인지도가 어떠했는지 짐작케 한다. 미스 오란씨로 선발된 송혜령은 3대 오란씨 모델이 되어 오란씨 마지막 광고를 촬영했고 90년대 인기 스타 음정희와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신은경도 이 대회 출전을 계기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그리고 2010년, 오란씨 출시 서른아홉 해이자 오란씨 광고가 중단된 지 20년 만에 오란씨 TV광고가 다시 시작됐다. 오란씨가 리뉴얼 되면서 광고를 재개한 것이다.
동아오츠카 BM팀 이준철 과장은 새로 나온 오란씨는 CM송과 이름을 제외하고 전부 바꾼 리뉴얼 제품이라고 밝혔다. 건강을 지향하는 음료로 재탄생 되고자 비타민C를 첨가하고 칼로리도 1/3로 낮춘데다 천연색소, 천연과즙을 사용한 것이다. 성분상으로 신제품인데 기존 CM송만큼은 유지하는 건 왜 일까. 아마도 소비자들에게 오란씨 송은 광고 노래로써만이 아닌 마음 속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다른 무엇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역시 잘 만든 CM송 하나 열 광고 부럽지 않다.
20년 만에 다시 선보인 오란씨 광고는 70년대 출시 때부터 현재까지의 오란씨 변천사를 이야기한다. 2010년 현재, 오란씨 4대 모델이 된 김지원은 1992년 생으로 만 18세이다.
오란씨의 나이보다도 어린 친구이기에 오란씨에 대해 잘 모르지 않을까 했더니 기우에 불과, 광고 속에서 오란씨의 상큼함을 잘 표현함은 물론 모델 선정 과정 중에는 오란씨 송을 직접 부르기도 했다.
새 오란씨 광고는 그동안 오란씨의 변천사를 보여줌과 동시에 유구한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 탄산음료 오란씨가 새롭게 바뀌었다는 것을 어필한다.
내로라하는 모델들이 4대 오란씨 걸 예비목록에 이름을 올렸었으나 각 시대 별 오란씨의 다양한 변화를 잘 표현하는 김지원의 연기력과 웃는 모습에 동아오츠카 관계자들이 김지원을 최종 선택했다는 후문이다.
듣기만 해도 추억에 빠져들게 하는 정겨운 CM송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바로 1990년 이후 볼 수 없어 아쉬웠던 청량음료 오란씨의 TV광고가 재개한 것. 20년 만에 부활한 오란씨 히스토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1년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은(현 동아쏘시오그룹 회장) 순수 우리자본과 우리기술만을 이용해 향이 들어있는 탄산음료 즉, 플레이버 음료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짜릿한 탄산 속에 상큼한 과일 맛이 첨가된 청량음료, ‘오란씨’가 그 것이다. 강신호 회장이 직접 네이밍한 브랜드 ‘오란씨’는 오렌지의 독일어인 오랑지(orange)와 비타민C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오렌지의 ‘오렌’이 우리말 ‘오랜’의 느낌을 가져와 차치하고 영어 대신 독일어 ‘오랑지’(orange)를 차용해 발음이 편하도록 ‘오란’으로 바꿔 ‘오란씨’가 탄생된 것이다.
1960년대 후반 다국적기업인 코카콜라사가 한 손에는 콜라를, 다른 한 손에는 환타를 들고 국내 시장에 진출해 탄산음료시장을 평정하던 때 오란씨는 그 틈새시장을 과감히 공략했다. 바로 플레이버(flavor) 음료 시장을 노린 것. 당시 국내에 향을 가진 탄산음료로는 환타 오렌지만 출시된 상황이었다.
같은 오렌지 맛 탄산음료로는 초기 진입브랜드인 환타와 경쟁력이 없다고 판 단한 동아오츠카는(당시 동아제약 식품사업부, 79년 동아식품으로 독립법인 창립, 이후 92년 동아오츠카로 개명) ‘오란씨 파인’, 즉 파인애플 맛 오란씨를 출시하며 승부수를 걸었다. 환타와 다른 맛으로 승부수를 건 ‘오란씨 파인’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이야 바나나, 파인애플 같은 열대과일을 손쉽게 먹을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수입과일은 워낙 고가라 선물이나 병문안 용도로 귀하게 쓰였다. 이런 상황에 음료수 하나로 갈증도 풀고 파인애플 맛까지 느낄 수 있으니 당시 소비자들이 얼마나 행복했을까. 자국민의 성향을 잘 분석한 섬세함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이런 이유로 ‘오란씨 파인’은 인기를 끌었고 오란씨의 브랜드 가치는 점점 치솟기 시작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결정적인 공로자는 바로 ‘오란씨 송’ 이다. 1977년 작사 작곡 윤형주, 부르는 이 이종용.
“하늘에서 달을 따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 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런 눈동자여, 오오오오 오란씨~”
아.. 지금 들어도 얼마나 아름다운 가사에 서정적인 멜로디인가. 이 로고송이 본인 나이보다 더 많아 직접 브라운관을 통해 접하지 못한 요즘 세대들도 멜로디나 그 느낌을 알고 있을 정도로 오란씨 송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이야 어린 친구들에게 “오.오.오.오.”를 들려주면 “빠를 사랑해~”를 바로 흥얼거리지만(소녀시대의 “Oh”), 그 당시만 해도 “오.오.오.오”를 들려주면 남녀노소 누구나 “오란씨~파인~~”이란 멜로디와 가사가 자동으로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오란씨 송’에는 그 인기만큼이나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강신호 회장이 오란씨파인을 개발해 광고에 넣을 CM송을 구상 중일 때, 여러 광고업체에서 동아오츠카(당시 동아식품)를 방문해 그들이 준비해 온 CM송을 제시했다. 몇몇 업체들의 발표가 끝나고 마지막 팀이 남았을 때 한 젊은이가 기타를 들고 강신호 회장 앞에 섰다. 그리고는 기타를 켜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
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런 눈동자여 오오오오 오란씨 오란씨 파~인”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임원들은 모두 말도 안 되는 광고음악이라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실제로 강한 멜로디와 또랑또랑한 성우의 목소리로 제품의 효능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던 70년대 광고의 특성 상 감성적으로 접근해 제품이미지를 묘사한다는 것은 파격이었다. 그것도 노래로. 모든 임원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때, 강신호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 청년을 불러
“이 음악으로 광고를 하면 잘 될 것 같은가”,
“네 회장님”,
“그럼 자네만 믿겠네.”
이 세 마디의 오고감으로 ‘오란씨 송’은 빛을 보게 되었고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소비자의 감성에 호소하며 서정적으로 접근한 오란씨 송. 그가 보여준 것은 단순히 노래가 아닌, 소비자에게 정서적으로 다가가 감성에 호소하는, 지금으로 따지면 감성마케팅 이었던 셈이다. 지금도 오란씨 송을 들을 때 마다 별님이 내려오고 탄산알갱이가 올라가는 그 청량한 광고 컷이 떠오르는 건 아마 강신호 회장의 선견지명과 노래를 부르던 그 청년의 순수함 덕택일 것이다.
지금의 오란씨 송을 있게 한 그 청년은 누굴까. 의대생이었지만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광고음악 작곡의 길로 들어서게 된 그. 심리적 방황도 있었지만 해맑게 노래를 부르던 그 청년은 현재 유명 CM송 작곡가이자 트윈폴리오 원년 멤버였던 가수 윤형주이다. 조금만 흥얼거려도 “아 그 노래!” 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CM송을 작곡한 윤형주씨의 생애 첫 작품이 바로 오란씨이다. 그때 강신호 회장이 그의 노래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오란씨의 운명과 그의 미래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도 같은 생각인지 윤형주씨는 지금도 여전히 그 때 강신호 회장님과의 만남이 “인생의 전환점” 이라고 말한다.
오란씨 송의 엄청난 파괴력만큼, 오란씨 광고모델도 빼놓을 수 없다. 일명 ‘오란씨 걸!’
70년대 영화배우 채령이 1대 모델이 됨을 시작으로 86년부터 88년까지 3년 동안 활동한 김윤희가 두 번째, 90년엔 ‘미스 오란씨’로 선발된 송혜령이 그리고 2010년, 20년 만에 김지원이 ‘오란씨 걸’이 되었다.
오란씨는 처음부터 여성 모델을 기용했다. 오란씨 모델들은 청순미부터 섹시미까지 섭렵해 2,3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세련된 화면을 보여준다. 특히, 80년대 활동을 했던 2대 모델 김윤희는 오란씨의 톡톡 튀고 상큼한 느낌을 잘 표현하며 당대 최고 인기를누렸다.
88세대들은 오란씨 하면 김윤희, 김윤희하면 오란씨를 떠올릴 정도로 김윤희는 많은 인기를 누렸다.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점빵(지금의 슈퍼마켓)에 붙어있는 수영복차림의 김윤희가 등장한 오란씨 포스터 쟁탈전이 벌어질 정도였으니, 당시 그녀의 인기가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1990년대 초반, 동아오츠카(당시, 동아식품)는 ‘미스 오란씨’ 선발대회를 개최했는데 자체브랜드 명을 내건 대회에다 텔레비전 방송까지 내보냈으니 그 당시 오란씨의 인지도가 어떠했는지 짐작케 한다. 미스 오란씨로 선발된 송혜령은 3대 오란씨 모델이 되어 오란씨 마지막 광고를 촬영했고 90년대 인기 스타 음정희와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신은경도 이 대회 출전을 계기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그리고 2010년, 오란씨 출시 서른아홉 해이자 오란씨 광고가 중단된 지 20년 만에 오란씨 TV광고가 다시 시작됐다. 오란씨가 리뉴얼 되면서 광고를 재개한 것이다.
동아오츠카 BM팀 이준철 과장은 새로 나온 오란씨는 CM송과 이름을 제외하고 전부 바꾼 리뉴얼 제품이라고 밝혔다. 건강을 지향하는 음료로 재탄생 되고자 비타민C를 첨가하고 칼로리도 1/3로 낮춘데다 천연색소, 천연과즙을 사용한 것이다. 성분상으로 신제품인데 기존 CM송만큼은 유지하는 건 왜 일까. 아마도 소비자들에게 오란씨 송은 광고 노래로써만이 아닌 마음 속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다른 무엇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역시 잘 만든 CM송 하나 열 광고 부럽지 않다.
20년 만에 다시 선보인 오란씨 광고는 70년대 출시 때부터 현재까지의 오란씨 변천사를 이야기한다. 2010년 현재, 오란씨 4대 모델이 된 김지원은 1992년 생으로 만 18세이다.
오란씨의 나이보다도 어린 친구이기에 오란씨에 대해 잘 모르지 않을까 했더니 기우에 불과, 광고 속에서 오란씨의 상큼함을 잘 표현함은 물론 모델 선정 과정 중에는 오란씨 송을 직접 부르기도 했다.
새 오란씨 광고는 그동안 오란씨의 변천사를 보여줌과 동시에 유구한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 탄산음료 오란씨가 새롭게 바뀌었다는 것을 어필한다.
내로라하는 모델들이 4대 오란씨 걸 예비목록에 이름을 올렸었으나 각 시대 별 오란씨의 다양한 변화를 잘 표현하는 김지원의 연기력과 웃는 모습에 동아오츠카 관계자들이 김지원을 최종 선택했다는 후문이다.
광고 촬영 중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는, 92년생인 김지원이 광고 속 90년 초를 대표하는 MC-Hammer 의 ‘백스텝 춤’을 어려워 해 촬영시간이 지연됐다는 것이다. 김지원은 촬영을 잠시 미루고 백댄서에게 춤을 배운 뒤 다시 촬영에 임했고 결국 프로정신을 발휘하여 그 장면을 훌륭히 소화 해냈다. 이 에피소드는 오란씨 광고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부활한 오란씨 광고의 반응이 참 좋다. 오란씨를 잊지 않고 반가워 해주는 대중과 대중의 기억 속에 자리잡은 오란씨, 모두에게 감사하다. ‘선생(先生)’이라는 단어는 학생을 배움의 과정에서 이끌어 주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 전에 먼저 태어난 사람이라는 기본적 의미를 지닌다. 나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에게는 하나라도 더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이다. 나이 들수록 스스로 강한 내공을 키우고 좋은 평판을 받으며 또 오랜 기간 자리를 비워도 기억되는 삶을 산다면 제법 잘 살고 있는 것 아닐까?
꾸준히 기능을 보강하고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서며 20년 동안 비운 자리에도 다시 환영 받는 오란씨를 보면 오란氏 선생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 ‘History는 있지만 절대 Old하지 않은 브랜드 오란씨’, 대한민국 대표 탄산음료 ‘오란씨’가 플레이버 음료 시장에 다시 한 번 돌풍을 일으킬 지 주목된다.
글 | 임근탁 롯데칠성음료 광고팀 주임
칠성사이다는 발매 초기부터 현재까지 ‘맑고 깨끗한 우리의 음료’라는 일관된 컨셉으로 국민정서와 부합되고 기업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광고활동으로 국내 브랜드의 자긍심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초기 캠페인부터 현재까지 광고 전략의 변천과정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칠성사이다가 올해로 6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제품이 탄생하고 사라지는 상황 속에서 60년을 이어온 제품이 있다는 것은 큰 자부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칠성사이다가 처음 선보인 1960년대,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칠성사이다를 마시기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소풍 같은 특별한 날에만 마실 수 있었던 작은 기쁨이 칠성사이다였던 셈이지요.
그래서인지 초창기 광고캠페인의 주요 소재는 소풍이었습니다. 특별한 날에 함께하는 특별한 음료, 칠성사이다로 제법 포지셔닝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970년대 들면서 칠성사이다의 광고는 유명한 CM송으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습니다. ‘슈슈슈바 슈리슈바’로 시작되는 길옥윤씨의 CM송,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었던 혜은이씨가 불렀던 CM 송으로 칠성사이다는 다시 한 번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칠성사이다 광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재가 바로 자연입니다.
칠성사이다의 소재는 압록강, 섬진강, 백두산, 국립공원, 한라산, 우포늪등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는 칠성사이다의 환경캠페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초반입니다. 당시 백두산을 배경으로 한 웅장한 광고는 아직도 소비자들의 기억속에 많이 남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후 ‘우포늪’편, ‘독도캠페인’편, ‘강강순례’(압록강, 섬진강)편, ‘물방울의 여행’(덕유산, 한라산)편으로 친환경 이미지를 이어가게 됩니다.
2010년 신규 캠페인의 목적으로 기존의 브랜드 자산인 환경이슈를 가지고 가되 조금 더 젊은 칠성사이다를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브랜드가 장수했다는 것은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는 의미와 동시에 노후화 되었다는 의미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으나 좀 더 밝고 경쾌한BGM을 사용했고 광고이미지도 3D로 빠르게 편집하였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많이 마시는 국내 최고의 음료를 만들기 위해 롯데칠성음료는 앞으로도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할 예정입니다. 많이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2010년 4월부터는 새로운 환경캠페인 광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세상의 목마름을 깨끗함으로 채웁니다.’라는 주제로 7개의 물방울들이 깨끗한 자연 속에서 신나게 모험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어떤 컨셉으로 만들어진 광고인가요?
칠성사이다는 대한민국 곳곳의 맑고 깨끗한 자연을 화면에 담으며 환경보호를 향한 일관성 있는 캠페인을 벌여왔습니다. 올해는 캠페인 자산을 지키면서도 지난 60년간의 역사, 향후 60년간의 각오를 좀 더 밝고 경쾌하게 표현하고자 분위기를 바꾸기로 하고 고민에 들어갔습니다.
음료회사의 본질은 ‘물’입니다. ‘물’에 무엇을 담고, 어떤 맛을 나게 하느냐에 따라 음료수의 종류와 성격이 달라집니다. ‘물방울’을 주인공으로 제품과 연계시키면 어떨까? 맑은 산 속의 계곡에서 튀어 올라 생성된 물방울들을 의인화시켜 즐겁고 경쾌하게 산과 계곡을 여행하는 모습을 화면에 담기로 하고 촬영에 착수했습니다.
해결은 쉽지 않았습니다. 가장 촬영이 까다롭고 CG 작업도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물방울’이었습니다. 문제는 계절과 날씨. 원하는 장면을 위해서는 계곡물이 콸콸 흐르고 푸른 녹음이 있는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헌팅을 위해 대한민국 곳곳을 누볐지만, 유난히 눈도 많이 내리고 기온도 풀리지 않았던 3월초의 계곡은 물도 녹지 않고 바위나 나무들엔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었습니다.
촬영을 위해 전 스텝들이 차디찬 계곡물 안에 들어가 수중촬영을 강행해야 했고, 바위의 눈을 녹이기 위해 연신 물을 뿌려대야 했습니다. 덕유산 국립공원 내 무주지역과 제주도 계곡에서 배경 촬영을 하는 동시에 2D, 3D작업을 통한 ‘물방울’ 디테일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CG작업을 통해 ‘칠성’을 의미하는 일곱 개의 물방울이 점차 형태를 갖춰가면서, 나뭇가지 사이를 가르고 함성까지 지르는 움직임 하나하나가 표현되는 광고가 완성되었습니다.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 칠성사이다 이지만, 이제는 젊은 세대의 입맛까지 만족시키는 것이 칠성사이다의 목표입니다. 단순히 장수 브랜드가 아닌 끊임없이 역동적인 브랜드로 칠성사이다를 인식시키기 위해 롯데칠성음료는 앞으로도 새로운 시도들을 계속할 예정입니다.
칠성사이다가 장수브랜드를 뛰어넘어 위대한 브랜드가 되기 위해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소비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계획이십니까?
칠성사이다의 향후 10년간의 목표는 단일 브랜드 매출 1조원입니다. (2009년 매출 2,800억원) 이것이 롯데칠성음료가 바라는 메가브랜드, 칠성사이다입니다.
이를 위해서 롯데칠성음료는 칠성사이다의 지속적인 환경캠페인과 문화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계획입니다. 칠성사이다의 환경캠페인은 중요한 브랜드 자산입니다. 탄산음료의 청량감을 표현함에 있어 맑고 깨끗한 자연환경은 최고의 소재이자 경쟁브랜드들과의 차별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표현기법상의 변화(3D기법, 밝고 경쾌한 BGM, 빠른 전개의 편집 등)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2010년 이후의 칠성사이다의 주된 캠페인은 역시 자연환경이 될 것입니다. 또한 칠성사이다의 매출 확장을 위해 젊은 고객들의 needs를 충족시키고, wants를 만들어가는 문화마케팅을 계속할 예정입니다.
장수브랜드를 넘어 위대한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세대, 연령을 불문하고 칠성사이다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장수브랜드라는 의미는 역사가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동시에 낡고 노후화되었다는 의미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젊은이들에게 어필하는 마케팅을 해 나갈 것입니다. 조금씩 젊어지는 하지만 지켜야 할 중심을 잃지 않는 칠성사이다를 기대해 주십시오
칠성사이다가 올해로 6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제품이 탄생하고 사라지는 상황 속에서 60년을 이어온 제품이 있다는 것은 큰 자부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칠성사이다가 처음 선보인 1960년대,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칠성사이다를 마시기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소풍 같은 특별한 날에만 마실 수 있었던 작은 기쁨이 칠성사이다였던 셈이지요.
그래서인지 초창기 광고캠페인의 주요 소재는 소풍이었습니다. 특별한 날에 함께하는 특별한 음료, 칠성사이다로 제법 포지셔닝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970년대 들면서 칠성사이다의 광고는 유명한 CM송으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습니다. ‘슈슈슈바 슈리슈바’로 시작되는 길옥윤씨의 CM송,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었던 혜은이씨가 불렀던 CM 송으로 칠성사이다는 다시 한 번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칠성사이다 광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재가 바로 자연입니다.
칠성사이다의 소재는 압록강, 섬진강, 백두산, 국립공원, 한라산, 우포늪등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는 칠성사이다의 환경캠페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초반입니다. 당시 백두산을 배경으로 한 웅장한 광고는 아직도 소비자들의 기억속에 많이 남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후 ‘우포늪’편, ‘독도캠페인’편, ‘강강순례’(압록강, 섬진강)편, ‘물방울의 여행’(덕유산, 한라산)편으로 친환경 이미지를 이어가게 됩니다.
2010년 신규 캠페인의 목적으로 기존의 브랜드 자산인 환경이슈를 가지고 가되 조금 더 젊은 칠성사이다를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브랜드가 장수했다는 것은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는 의미와 동시에 노후화 되었다는 의미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으나 좀 더 밝고 경쾌한BGM을 사용했고 광고이미지도 3D로 빠르게 편집하였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많이 마시는 국내 최고의 음료를 만들기 위해 롯데칠성음료는 앞으로도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할 예정입니다. 많이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2010년 4월부터는 새로운 환경캠페인 광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세상의 목마름을 깨끗함으로 채웁니다.’라는 주제로 7개의 물방울들이 깨끗한 자연 속에서 신나게 모험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어떤 컨셉으로 만들어진 광고인가요?
칠성사이다는 대한민국 곳곳의 맑고 깨끗한 자연을 화면에 담으며 환경보호를 향한 일관성 있는 캠페인을 벌여왔습니다. 올해는 캠페인 자산을 지키면서도 지난 60년간의 역사, 향후 60년간의 각오를 좀 더 밝고 경쾌하게 표현하고자 분위기를 바꾸기로 하고 고민에 들어갔습니다.
음료회사의 본질은 ‘물’입니다. ‘물’에 무엇을 담고, 어떤 맛을 나게 하느냐에 따라 음료수의 종류와 성격이 달라집니다. ‘물방울’을 주인공으로 제품과 연계시키면 어떨까? 맑은 산 속의 계곡에서 튀어 올라 생성된 물방울들을 의인화시켜 즐겁고 경쾌하게 산과 계곡을 여행하는 모습을 화면에 담기로 하고 촬영에 착수했습니다.
해결은 쉽지 않았습니다. 가장 촬영이 까다롭고 CG 작업도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물방울’이었습니다. 문제는 계절과 날씨. 원하는 장면을 위해서는 계곡물이 콸콸 흐르고 푸른 녹음이 있는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헌팅을 위해 대한민국 곳곳을 누볐지만, 유난히 눈도 많이 내리고 기온도 풀리지 않았던 3월초의 계곡은 물도 녹지 않고 바위나 나무들엔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었습니다.
촬영을 위해 전 스텝들이 차디찬 계곡물 안에 들어가 수중촬영을 강행해야 했고, 바위의 눈을 녹이기 위해 연신 물을 뿌려대야 했습니다. 덕유산 국립공원 내 무주지역과 제주도 계곡에서 배경 촬영을 하는 동시에 2D, 3D작업을 통한 ‘물방울’ 디테일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CG작업을 통해 ‘칠성’을 의미하는 일곱 개의 물방울이 점차 형태를 갖춰가면서, 나뭇가지 사이를 가르고 함성까지 지르는 움직임 하나하나가 표현되는 광고가 완성되었습니다.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 칠성사이다 이지만, 이제는 젊은 세대의 입맛까지 만족시키는 것이 칠성사이다의 목표입니다. 단순히 장수 브랜드가 아닌 끊임없이 역동적인 브랜드로 칠성사이다를 인식시키기 위해 롯데칠성음료는 앞으로도 새로운 시도들을 계속할 예정입니다.
칠성사이다가 장수브랜드를 뛰어넘어 위대한 브랜드가 되기 위해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소비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계획이십니까?
칠성사이다의 향후 10년간의 목표는 단일 브랜드 매출 1조원입니다. (2009년 매출 2,800억원) 이것이 롯데칠성음료가 바라는 메가브랜드, 칠성사이다입니다.
이를 위해서 롯데칠성음료는 칠성사이다의 지속적인 환경캠페인과 문화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계획입니다. 칠성사이다의 환경캠페인은 중요한 브랜드 자산입니다. 탄산음료의 청량감을 표현함에 있어 맑고 깨끗한 자연환경은 최고의 소재이자 경쟁브랜드들과의 차별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표현기법상의 변화(3D기법, 밝고 경쾌한 BGM, 빠른 전개의 편집 등)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2010년 이후의 칠성사이다의 주된 캠페인은 역시 자연환경이 될 것입니다. 또한 칠성사이다의 매출 확장을 위해 젊은 고객들의 needs를 충족시키고, wants를 만들어가는 문화마케팅을 계속할 예정입니다.
장수브랜드를 넘어 위대한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세대, 연령을 불문하고 칠성사이다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장수브랜드라는 의미는 역사가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동시에 낡고 노후화되었다는 의미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젊은이들에게 어필하는 마케팅을 해 나갈 것입니다. 조금씩 젊어지는 하지만 지켜야 할 중심을 잃지 않는 칠성사이다를 기대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