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배는 말했다. 광고를 뜻하는 AD는 사실 ADD의 줄임말이라고. 하나의 광고 캠페인이 훌륭한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광고주와 대행사의 AE, Creative팀의 CD, CW, GD, PD 그리고 매체, SP팀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이 서로의 머리와 몸을 맞대고 협력해서 최상의 하모니를 이뤄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우리 광고쟁이들은 오늘도 good ad를 위해서 때론 싸우고 때론 격려하면서 good add를 하고 있다.
내 인생의 대홍 광고’라…. 편집부로부터 가장 인상깊은 대홍기획 광고 한 편을 꼽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고민에 휩싸였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사실 그간 작업해온 광고들 모두 그 순간순간 ‘내 인생의 대홍 광고’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 한 편만 선정하자니 고민이 될 수밖에. 그렇게 며칠 보내던 중에 몇 년 전 초보팀장 시절 우리 팀에서 기획을 담당한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광고가 떠올랐다.
이미 시장에서 잘 성장하고 있는 브랜드의 지속된 캠페인이 아니라, 새로운 카테고리의 신제품을 론칭한 광고였고, 아주 단기간에 시장과 소비자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점에서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는 나에게 잊지 못할 광고가 되었다. 아무리 저관여 제품 광고라고 해도 한 달 이내에 소비자 인지와 판매, 모든 측면에서 그렇게 즉각적인 반응이 일어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기능성 음료나 차 음료 시장이 매우 활성화되었지만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광고가 온에어된 2006년 초는 ‘웰빙 음료’들이 막 뜨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롯데칠성은 그동안 특별한 광고활동 없이도 나름대로 판매성과를 올리고 있던 ‘모메존-석류’ 제품을 리뉴얼하여 새로운 기능성 음료의 스타 제품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광고주 내부와 대홍기획 기획팀, CR팀에 떨어진 1차 과제는 임팩트 있는 브랜드네임을 짓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음료 광고에 대한 방송광고심의가 엄격해서 CM에서 구체적으로 ‘~가 좋다더라’ ‘얼굴이 예뻐진다’ 등의 기능적 소구와 관계된 직간접적인 표현을 할 수 없었다.
기능성 음료의 경우 제품의 맛도 물론 중요하기는 하지만, 당시 소비자의 웰빙니즈에 맞추려면 “이왕이면 맛도 좋고 ~~에도 좋은 음료”라는 제품의 기능적인 USP(Unique Selling Proposition)가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석류음료’ 의 특성인 ‘여자들이 마시면 몸에 좋고, 예뻐지는 음료’ 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브랜드네임에 제품의 기능적인 특징을 담기로 했다.
그래서 광고주와 수차례 협의한 끝에 탄생한 이름이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다. 제품명으로는 찾아보기 드문 서술형 이름이라 네이밍 자체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처음에는 ‘미인은 석류를 좋아해’라고 했다가 ‘미인’이란 말이 다른 제품명으로 등록돼 있는 터라 ‘미녀’라는 말로 수정하게 됐다. 입에 착 달라붙는 네이밍, 여기에 한 번만 들어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CM송과 영화 <왕의 남자>로 ‘여자보다 더 예쁜 남자’라 불리며 국내 꽃미남 트렌드를 몰고 온 모델 이준기의 결합으로 광고는 초기부터 예상 밖의 반응을 얻었다. 광고가 온에어된 뒤, 동네에서 만난 꼬마들이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자꾸자꾸 예뻐지면 나는 어떡해’ 하며 CM송을 따라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며 ‘아~ 이런 게 현장에서 느끼는 광고에 대한 반응이구나~’하면서 내심 흐뭇하기도 했다.
광고의 인기에 힘입어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는 출시 35일 만에 매출 100억 원을 넘어선 데 이어 출시 70일째인 5월 7일에는 매출 200억 원 돌파라는 기록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제품이 출시되던 날, 우리 팀원들은 롯데칠성 서초동 공장에서 진행된 일종의 제품 출정식에 참석해 제품명이 새겨진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고사도 지내고 막걸리도 한잔하면서 새로운 브랜드의 성공을 기원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좋은 광고는 광고주가 만든다’는 말도 있고, 때론 누군가의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가 좋은 광고의 촉매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하나의 광고 캠페인이 훌륭한 성과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서로의 머리와 마음, 그리고 몸을 보태는 Add의 하모니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미녀는 석류는 좋아해’ 광고는 아직도 나의 머릿속에 쉽게 지워지지 않는 캠페인으로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광고인으로, 그리고 대홍인으로서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스무 해째가 돼간다. 그동안 무엇을 남겨왔는지에 대한 반성 못지않게 앞으로 어떤 광고를 만들어 가고, 어떤 모습의 삶을 꾸려 나갈 지에 대한 고민이 더 크게 다가오는 때다. 광고인은 배워온 세월만큼 가치가 올라가는 숙련공이 아니라, 얼마나 지속적으로 스스로의 머리와 마음속에서 새로움과 아이디어를 꺼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 가치의 기준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때론 익숙한 생각, 틀에 박힌 시선과 이별해보기도 한다. 요즘처럼 소비자의 마음이 얼어버린 시절일수록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각이나 돌파구가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내일의 해가 다시 뜨듯이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오겠지’만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새해를 준비하고 맞이하느냐에 따라 누군가의 해는 또 다른 누군가의 해와는 다른 내일의 해가 될 것이다. 새로운 내일의 해를맞이하듯이 새롭게 만들어 갈 ‘내 인생의 대홍 광고’가 기다려진다.
박계남(기획7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