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매체를 찾아 반짝이는 작은 별들
대홍커뮤니케이션, 2008년, 11-12월, 199호 기사입력 2009.02.04 01:49 조회 8669




지난 6월, 올해로 55회째인 칸국제광고제를 찾은 TBWA World wide 회장인 장 마리 드뤼(Jean-Marie Dru)는 최근 광고제의 수상 동향에 대해 한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큰 것이 아름답다(The Beauty of Big).’ 광고계의 베테랑 장 마리 드뤼에 따르면 통계상 여러 광고 행사의 상들 중 84%가 모두 큰 광고주에게 돌아가고 있고, 또한 최근 칸광고제 수상 리포트를 봐도 광고주가 클수록 광고의 질이 좋아지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국내에서도 다르지 않다. 최근 국내 유수 광고제의 수상작들 역시 대개는 큰 캠페인이었다. 단발 TV광고나 인쇄광고 단편은 크리에이티브가 기발해도 ‘약하다’는 평가를 받기 쉽고, 약한 놈은 지는 것이 이른바 ‘수상’의 법칙이 아니던가. 다시 광고제 시즌이 다가오는 요즘, 나는 ‘어디 약하면서도 아름다운 아이디어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도무지 큰 캠페인을 넉넉하게 밀어줄 광고주가 없다는 핑계 아닌 핑계. 그러면 작은 캠페인으로 주목받는 광고쟁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광고 : : 1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 도심 곳곳에 어느 날 낙서처럼 그림이 그려진다. 그것도 갈라진 벽이나 깨진 바닥들만 골라서. 레오버넷이 제작한 무좀약 ‘카네스텐’ 광고는 옥외광고 형식을 빌렸지만, 광고가 게시될 환경 그대로를 광고 비주얼로 사용해 지금껏 없던 독특한 광고를 만들어냈다. 제품의 패키지 말고는 그 어떤 카피도 없지만, 누구라도 한눈에 알아보고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아이디어. 광고가 게재된 후, 이 광고들은 곧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고, 또 사진과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었다.

광고 : : 2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1만 원짜리 한 장. 당신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가? 캐나다의 작은 광고 대행사인 왁스 갤럭시(Wax Galaxy)는 사람들의 이런 심리를 이용해 재미있는 캠페인을 벌였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장소에 20달러짜리 지폐를 놓아둔 것. 돈을 본 사람들은 즉각 그것을 집게 되고, 자연스럽게 뒷면에 적힌 광고 문구를 읽게 된다.

“어머나 세상에! 이 돈을 발견하시다니…. 숨어 있는 돈을 찾아내는 데 소질이 있으신 게 분명하네요. 혹시 모금 관련 직종에 관심이 있나요? 저희가 지금 사람을 뽑고 있는데 말이죠. 생각 있으면 연락주세요. 그냥 편하게 얘기나 한번 하죠, 뭐.”

이 재미있는 캠페인 이후, 클라이언트인 세이트(SAIT) 칼리지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전화한 모든 사람들이 정말로 돈을 찾아내는 데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광고 : : 3 매년 수천 명의 사람들이 불법적으로 거래되는 영국은 이러한 인신매매의 실태를 알리기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캠페인을 계획한 사치 앤사치는 영국 상업지구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한복판에 세일 광고판과 나란히 ‘Human Sale’이라고 적힌 광고판을 설치했다. 익숙한 형태의 세일 안내판은 즉각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그 내용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배포된 리플릿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인종 대 바겐세일. 더 커진 선택의 폭. 막 도착한 16세 이하 소녀, 3,000파운드부터. 10세 이하 어린이는 20% 추가 세일합니다. 모든 연령대의 일꾼은 500파운드부터. 단체 구매 시 할인 혜택을 드립니다. 전 세계에서 수입된 사람들. 나이지리아산 여성 1,000파운드, 중국산 소년 3,000파운드….”
이 캠페인은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자국의 인신매매 실태를 알리는 데 성공했으며, 광고를 접한 사람들은 영국 내 인권 착취의 문제가 더 이상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광고 : : 4 영국의 작은 대행사인 비티 맥기네스 번가이(Beattie McGui - ness Bungay) 사는 자신의 광고주인 ‘카링(Carling) 맥주’를 홍보하기 위해 독특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카링은 인지도나 시장점유율이 높지 않은 맥주였지만, 트렌디한 제품인 아이폰(iPhone)과 연계한 광고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와 선호도를 단숨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들이 기획한 것은 아이프린트(i Print)라는 액정화면. 맥기네스 사는 아이폰만을 위한 액정화면을 제작해 사람들에게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게 했다.

차가운 맥주의 씨즐감이 제대로 살아 있는 화면 속 맥주는 실감나는 사운드와 함께 실제 터치를 하면 벌컥벌컥 마시는 것처럼 화면이 줄고 또다시 채워진다. 액정화면에는 브랜드 외에 그 어떤 광고 문구도 없지만 회의하다 문득, 길을 걷다 문득, 무심코 들여다본 휴대폰 안에 뽀글뽀글 차오르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보면, 누구든 ‘카링!’을 떠올리지 않겠는가?



농구 경기 40분 동안 선수가 실제로 공을 만지는 시간은 고작 2`~3분. “경기의 대부분은 공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진행된다”고 미국 농구팀 감독 에디 수튼은 말했다. 메이저 대행사에 다니며, 메이저급 광고들을 보고, 어쩌면 메이저급 캠페인의 꿈만 꾸고 있는 사이, 공과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선 벌써 다른 경기가 한창인지도 모르겠다.

메이저 매체가 아닌 것은 우리가 고민할 문제가 아니고, 또 성가시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있는 사이, 기발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매체를 찾아내고 있는 저 반짝이는 작은 별들. 우리는 태양을 반짝인다고는 하지 않는다. 큰 것이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작은 것은 빛이 난다.

김수진(CR5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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