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를 조사하고 분석한다고?
Cheil Worldwide, 2009년 04월, 399호 기사입력 2009.05.15 12:00 조회 5763

박기철 | 경성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kaciy@ks.ac.kr

마케팅에서 제품을 사는 소비자가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람(Human)인 생활자를 감동시키는 일은 선물을 통하여 사람을 감동시키는 원리와 같다. 생활자로서의 고객을 감동시키려면 먼저‘소비자 조사와 분석’보다‘생활자 체험과 이해’를 하여야 한다. 생활자 체험과 이해란 기술적으로 특별한 비법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자에게 다가가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가장 소박한 철학에 가깝다. 이러한 생활자 체험과 이해는 객관적 수치가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지만 오히려 그러한 한계가 있기에 더욱 마케터의 통찰력이 발휘되도록 이끌 수 있다.

감동의 선물 = 감동의 마케팅


만일 어떤 사람이 <사진 1>처럼 생긴 저에게 선물을 한다고 합시다. 저를 자주 접하는 그녀는 제가 오십줄에 막 다가선 40대 후반의 남자이고, 직업은 교수로 월 소득은 많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그럭저럭 먹고 살만 하다고 여기며, 이런 사내에게 줄 선물로 적당한 것을 고르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40~50대 전문직 남자를 대상으로 하는 서베이 조사 결과를 참고하였다고 합시다.

그 보고서의 제목은 ‘연령별?소득별?직업별로 적합한 선물에 대한 양적 조사 보고서’ 라고 하지요. 그 조사 보고서를 보니 이런 사람에게는 넥타이나 와인이 대개 적당하다고 추천하였다고 합시다.

그래서 그 보고서에서 찍어주는 대로 저에게 넥타이나 와인을 선물하였다고 합시다. 과연 그 선물은 저의 심리타점(Sweep Spot)을 톡 건드려서 저를 감동시킬 수 있을까요? 아마 그렇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뇌물이 아니라 선물을 받으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기분이좋은 것과 감동을 느끼는 것은 차원이 다르지요.

그렇다면 그녀가 저에게 감동의 선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따위 조사 보고서를 내던져 버려야 합니다. 간혹 그런 서베이 보고서나 라이프 스타일 조사 보고서와 같은 걸 참고할 수도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 그리 유용하지는 못합니다. 대신에 그녀가 저를 평소에 만나면서 제가 무슨 말을 하였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보았다면 저를 감동시키는 선물을 할 기회가 분명히 커집니다.

가령 제가 입고 다니는 옷이나 제가 먹고 마시는 음식들, 그리고 제가 하는 이야기를 유심히 보고 들었다면 굳이 조사 보고서를 들추지 않더라도 저라는 사람은 넥타이, 와인과는 거리가 먼 사람임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겠지요. 그래서 양복에 아무 관심없는 저에게 넥타이는 선물로서의 가치가 없고, 또 와인의 격식을 완전히 무시하고 그냥 소주처럼 마시는 무식한 저에게 와인 선물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되는 먹을거리를 선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래서 현미 한 봉지나 토마토 한 박스를 선물하였다면“이 친구가 평소에 나에 대해 관심이 있었구나!”하면서 저는 기분도 좋고 감동도 받을 것입니다. 특히 선물 비용은 거의 절반이나 줄이면서도 효율도 좋고 효과도 좋겠지요.

실제로 저는 그런 선물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음악 CD를 선물로 받았는데, 한 친구는 크리스마스 때라고 캐롤송 CD를 주었고, 또 다른 한 친구는 제가 했던 사소한 음악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여 에릭 클랩튼의 언플러그드 CD를 주었지요. 그러니까 전자는 그냥 저에 대한 별 관심없이 형식적으로 선물한 것이고, 후자는 저에 대한 평소의 관심을 바탕으로 선물한 것이지요.

그 둘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의 감동 차이를 낳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고객을 감동시켜야 하는 마케팅을 한답시고, 책상머리에서 너무나 뻔한 소비자 서베이 조사 결과를 보고 읽으며 이를 바탕으로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립니다. 그것은 저라는 생활자에게 넥타이나 와인, 또는 캐롤송 CD를 선물하는 꼴이나 다름 없지요. 대신에 저에게 현미나 토마토, 또는 언플러그드 CD 선물로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것처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저라는 사람에 대한 평소의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겠지요.

저는 이렇게 마케팅에서 우리 제품을 사는 소비자가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람(Human)인 생활자를 감동시키는 일은 선물을 통하여 사람을 감동시키는 원리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함정이기 쉬운 조사

이 마케팅을 위한 소비자 조사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양적 조사와 질적조사, 또는 정량조사와 정성조사라고도 합니다. 전자를 대표하는 것은 질문지조사(Survey)이고, 후자를 대표하는 것은 초점집단면접(FGI: Focus Group Interview)이지요. 그래서 양적 조사인 서베이, 질적 조사인 FGI를 마쳤다면 소비자 조사 분석은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형화된 소비자 조사와 분석만 가지고는 고객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지요. 특히 통계 방법을 통해 매우 객관적으로 보이는 수치 결과를 얻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마케팅 통찰력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글 중에 소비자 조사의 한계에 대한 내용이 기억나네요. 그것은 어린이 칫솔과 몽구스 이야기이지요(그림 1).

우선 아이들의 칫솔 이야기부터 하지요. 어린이용 칫솔의 손잡이 두께를 결정하기 위하여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양적 서베이를 이용한다고 합시다. 만일 서베이 설문 조사에서 여러 가지 칫솔 손잡이의 두께 치수가 번호로 주어져 있고 이를 보고 대답하게 한다면 손이 작은 아이들은 두께가 얇은 쪽에 막연하게 0.7cm 정도에 표시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들은 손이 작기에 오히려 2cm 두께의 굵고 넓적한 칫솔 손잡이가 필요한 것이지요. 결국 정형화된 서베이보다는 아이들이 칫솔질을 어떻게 하는지 실제로 유심히 보고 듣고 대화하면서 마케터가 생활자 체험과 이해를 해야 마땅한 것이지요.

또 하와이에서 쥐를 퇴치하기 위하여 몽구스를 수입하려고 했을 때, 몽구스가 얼마나 쥐를 잘 잡는지 실험하려고 몽구스와 쥐를 하나의 방에 가둬놓고 몽구스가 쥐를 얼마나 잘 잡는지 보는 것은 마치 FGI 룸에서 소비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습니다.

밀폐 공간에서 몽구스가 아무리 쥐를 잘 잡아 먹더라도녀석들이 살아 있는 삶의 현장에서는 몽구스가 쥐를 잘 잡아 먹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몽구스는 낮에 활동하고 쥐는 밤에 활동한다면 그 둘은 만날 일이 없으므로 몽구스는 몽구스대로 쥐는 쥐대로 계속 번식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 이치로 FGI를 하는 밀폐된 공간에서 고객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아무리 잘 떠들더라도 그들이 실제로 시장이라는 현장에서 그 이야기대로 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결국 <그림 1>에서처럼 양적 조사인 서베이도, 질적 조사인 포커스 그룹 인터뷰도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리게 하는 그럴듯한 양적?질적 조사의 함정이기 쉽습니다.

한계가 있기에 통찰력이 발휘

이러한 조사의 함정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바로 소비자 조사와 분석을 넘는 생활자 체험과 이해입니다. 이것은 양적 정량조사인 서베이는 물론 아니고, 질적 정성조사인 인터뷰만도 아닙니다. 이는 기존의 소비자 조사와 분석을 얼마나 더 잘 하느냐 하는 방법의 향상(Upgrade) 문제가 아니지요. 생각의 축을 완전히 바꾸는 사고의 전환(Paradigm Shift)을 요하는 것입니다.

우선 생활자 개념부터 말씀 드리지요. 생활자란 고객을 소비자가 아니라 그냥 인간으로 보는 것입니다. 즉 우리 제품을 사는(Buying) 소비자가 아니라 우리 제품과 함께 사는(Living) 생활자로 보는 것이지요. 이 생활자란 개념은 1970년 대에 일본의 광고회사인‘하쿠호도’에서 만든 것이지요. 그 때 하쿠호도는 제일 기획의 파트너였기에 생활자라는 단어는 저보다 더 익숙하실 수 있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굉장히 진보적인 개념이면서, 40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그 진가가 발휘되는 근본적인 개념이지요.

고객을 소비자로 여기면 우리 제품을 사서 우리에게 이익을 주는 하나의 영리 대상으로만 보입니다. 하지만 생활자로 보면 우리 제품과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 보이므로 인위적이며 전략적인 마케팅에서 벗어나 더욱 자연스럽고 순리적인 마케팅 활동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러한 생활자에 대한 체험과 이해란 마케팅 기획을 하기 전에 마케터가, 또는 브랜드 매니저 자신이 먼저 생활자 체험을 해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많은 경우에 이러한 생활자에 대한 체험을 하기는커녕 소비자 조사를 한답시며 무조건 설문지를 만들어 돌리며, 또 더 나아가 FGI를 해야 한다며 나서게 되지요. 그것도 마케터 자신이 직접 하는 게 아니라 외주를 주어 마케터는 그 조사 분석 결과 보고를 받거나 보고서를 책상머리에서 보고 중대한 의사결정을 합니다. 이래 가지고는 돈만 들어가고 힘만 들어가서 고생고생하다가 결국은 사업을 접게 될 확률이 아주 크지요.

하지만 마케팅의 첫 단추인 생활자 체험을 하게 되면 우리 제품의 가치 컨셉트인 브랜드 컨셉트가 무엇이 되어야 할지, 또 생활자가 우리 브랜드를 느끼는 접촉점들에 잘 다가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활자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생활자 체험과 이해란 마케터가 생활자인 고객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입니다.

격물치지(格物致知)와 같은 맥락의 생활자 체험과 이해

가령 아기용 목욕비누를 마케팅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음 이야기는 <Hitting the Sweet Spot>이라는 책에 나오는데 참 적절한 비유이지요. 대개는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 등 대도시에 거주하는 아기 엄마들을 대상으로 서베이를 하거나 인터뷰를 하겠지요. 이 때 서베이 표본수를 늘릴수록, 또 인터뷰 집단수를 늘릴수록 소비자 조사 분석의 정확도는 높아진다고 추정됩니다.

하지만 그래 가지고는 절대로 아기 엄마의 심리타점을 건드리는 효과적인 마케팅을 하기 어렵고 힘듭니다. 아마 불가능할지도 모르지요. 이런 뻔한 소비자 조사 분석이 아니라 마케터는 실제로 아기 엄마가 아기를 어떻게 목욕시키는지 그 생생한 생활 현장 속으로 푹 들어가야 합니다. 인류학자들이 어느 소수 민족을 연구할 때 그 족속들 속으로 푹 빠져 들어가 살듯이 말이지요. 그들에게 서베이나 FGI는 가당치도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생활자에게도 먼저부터 들이대는 서베이나 FGI는 가당치도 않습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마케터 자신이 아기 엄마 체험을 실제로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아기 엄마들과 정식으로 인터뷰를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눠야 하겠지요. 이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아기 엄마들을 만났는가 하는 점이 아닙니다. 열 명의 아기 엄마들을 만나더라도 마케터가 징한 아기 엄마 체험을 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할 수 있지요.

그렇게 해서 아기 엄마들의 마음을 진정 이해할 수 있었다면 비로소 마케팅을 할 수 있는 기본 자격이 갖추어진 셈이지요. 그리고 나서 뭔가 객관적인 자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뭔가 확실한 문제의식이 생겼을 때, 정량조사를 하는 것이지요.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생각하면 생활자 체험과 이해는 매우 불완전하며 불분명한 방법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생활자 체험과 이해란‘모든 사물이나 현상의 이치를 파고 들어가(格物) 앎에 이른다(致知)’고 하는‘격물치지’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실제로 만져 보고 느껴 보고 체험해 보고 대화해 보고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면서 우리 생활자의 현상을 이해한다는 의미에서이지요.

요즘 이러한 생활자 체험과 이해를 위한 기법들이 매우 기술적으로 향상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매장에서 생활자의 눈동자를 살펴 보는 아이 트래킹이나 뇌영상을 촬영하는 방법들도 있지요. 하지만 생활자 체험과 이해란 그처럼 기술적으로 특별한 비법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자에게 다가가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가장 소박한 철학에 가깝지요. 이러한 생활자 체험과 이해는 객관적 수치가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지만, 오히려 그러한 한계가 있기에 더욱 마케터의 통찰력이 발휘되도록 이끕니다.

이제 객관성이라는 깊은 늪에서 벗어난다면, 생활자 체험과 이해는 가장 사람의 마음을 알아 그들을 움직이도록 하는 근본적인 열쇠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감동 ·  마케팅 ·  선물 ·  소비자조사 ·  서베이 ·  소비자분석 ·  양적조사 ·  질적조사 ·  정성조사 ·  소비자행동 ·  소비자마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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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컨설팅, 실행을 담보로 할 수 있을 것인가? ‘MCC 고베식당’ 프로젝트는 둘로 나뉘어진다. 바로 컨설팅과 실행이다. 그 둘이 함께 붙어 있기에 힘을 발휘한 프로젝트였고, 또한 둘로 나뉘어 있기에 어려운 프로젝트기도 했다. 2010년 4월 27일 매일유업에서 날아든 굵직한 숙제 하나. “우유하던 우리가 카레를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잘 할지… 총체적으로 해봐!” 그렇게 시작된 숙제는 제일기획으로서는 새로운 ‘제품 컨설팅’ 의 영역이었다. 지금 이 시점, ‘ 크리에이티브 컨설팅’이라 명명된 우리만의 USP(Unique Selling Point)가 되어가고 있지만 초기만해도 가뜩이나 압도적 독점브랜드가 있는 시장 상황 속에 제품개발도 완결되지 않은, 유통도 가격도 결정되지 않은 실로 막막한 프로젝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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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영영사전으로 유명한 영국의 출판사 콜린스는 22년을 마무리하며 올해의 단어로 ‘Permacrisis(영구적 위기)’를 선정했다. 팬데믹, 기후변화, 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 경기 침체 등 대격변의 시대에 불안정과 불안이 지속되는 일상을 겪고 있는 시대상이 반영된 단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