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l 이현숙 (PR전략팀 차장)
『습지생태보고서』는 선물 받은 책이다. 처음엔 ‘뭐야, 환경문제를 다룬 만화인가?’라고 생각했다. ‘지금 나한테 환경문제를 고민하라는 건가?’ 궁금해하며 책을 다시 들여다보니 부제가 심상치 않다. ‘리얼 궁상 만화’라니…. 표지에 등장한 인물들의 외모도 너무 사실적이다. 궁금해진다. 뭐니 너?
2005년 경향신문에 연재된 단편 만화 모음집 『습지생태보고서』는 하등 생물이 서식한다는 의미에서 ‘습지’를 차용했고, 서식하는 종(種)의 생태 환경을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생태보고서’란 단어를 썼다고 한다. 하숙방(습지)을 배경으로 돈 없고 힘없고 의욕은 조금, 그렇지만 희망은 많이 가지고 있는, 같은 방을 쓰는 4명의 대학 친구와 의인화된 사슴 한 마리(습지에 서식하는 하등 생물)의 리얼 궁상스러운 일상을 다룬 만화다. 습지에 서식하는 하등 생물은 환경에 따라 변하는 종잡을 수 없는 존재다.
작가는 욕망과 허름한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대부분 욕망을 선택하는 궁핍한 청춘인 자신들을 하등 생물로 표현했다. 욕망과 현실이 일치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욕망에 무릎 꿇는 그들의 선택은 지극히 타당해 보인다. 사회에 비판적이며, 허상이라 생각되는 것을 좇는 사람들을 보면 경멸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도 모르게 그들을 동경하고 있는 현실의 모습을 담아낸다. 그래서 답답하고 안타깝고 때론 서글프지만 ‘인간은 원래 극단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그 속에서 힘을 찾아내는 미덕이 느껴진다.
작가는 뼈 있는 유머로 이를 보여준다. “밤새 꺼지지 않는 형광등, 방 안 가득 자욱한 담배 연기, 빈틈없이 들어찬 짐들 누군가는 비참이라 말하지만 나는 행복하다. 세상의 번잡함과호화로움에 눈 돌리지 않는 친구들과 나를 이 땅에 서게 해주는 소중한 꿈이 있으니 슬퍼할 일은 없을 거다. 없을…거다… 잘 데가 없다. C8… 성공하자! 지평선이 생성되는 방에서 매일매일 천바퀴씩 굴러다녀 줄 테다!”(14회_안분지족)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지갑을 두둑하게 만들어준 『습지생태보고서』 연재를 그만두고 다시 가난 속으로 들어갔다.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는 가난이 아닌 궁상 수준의 가난은 생활 방식이라는 작가의 말. 그리고 덧붙여 가난해질까 무서워서 해야 할 작업을 못한다면 이 작업을 택한 의미가 사라져버린다는 작가의 말이 와닿는다.
이렇게 설명을 하고 보니 ‘세상도 어렵고 나도 사는 게 힘든데 만화까지 이런 걸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니다. 『습지생태보고서』를 읽으면서 두 번 혼났다. 첫 번째는 퇴근길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빵! 터져서 웃음을 참느라 정말 혼났다. 집에가서 읽을까 싶었지만 책을 덮을 수 없었다. 일요일 밤 <개그콘서트>를 보지 않고 잘 수 없는 것처럼. 이 만화, 뼈 있는 유머를 굉장히 재치 있게 그려낸다.
두 번째는 서평을 읽다가 혼났다.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욕망은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법. 낄낄대며 읽다가 무언가 가슴에 턱 걸리는 이유는 독자도 습지 인근에 서식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 그런가? 그랬구나.
한 권의 만화에 작가의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장난기 가득한 대사가 읽는 즐거움을 배가한다. 이 책을 쓴 작가의 의도는 ‘일단웃자’라고 한다. 그러므로 난 성공적인 독서를 한 것이다! 일단 웃자. 그 씁쓸함을 이겨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