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 데카르트?
17세기에 근대철학의 토대를 구축한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은 ‘방법서설’ 책에서 그가 한 말이다. 수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기하학에 대수적 해법을 적용한 해석기하학을 창시했는데, 우리가 중학교 때 배운 X축, Y축의 좌표가 바로 데카르트가 창안한 것이다. 또 물리학자로서 빛의 굴절 법칙을 발견하기도 한 인물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데카르트(Descartes)에 마케팅이 더해져 ‘데카르트 마케팅’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는 사실이다. 데카르트의 면면을 본다면 상당히 이성적인 마케팅이어야 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우리가 말하려고 하는 데카르트는 엄격하게 말해 ‘테카르트(Techart)’로 기술(Tech)과 예술(Art)의 합성어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데카르트 마케팅은 소비자의 이성적인 좌뇌와 감성적인 우뇌를 모두 완벽하게 만족시키려는 마케팅을 말한다. 이제 데카르트 마케팅은 보다 폭넓은 아트 마케팅(Art marketing)과 거의 흡사한 개념으로까지 진전했다.
데카르트 마케팅의 원류
마케팅에 예술을 비롯한 미학을 적용하는 것은 사실 최근만의 일은 아니다. 1997년에 번 슈미트와 알렉스 시몬슨?톰 피터스(공저)가 ‘Marketing Aesthetics(우리나라에서는 ‘미학적 마케팅’ 제목으로 번역)’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에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소비자의 감각에 호소하면 미학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은 기업들이 이미 미학적 상품들을 이미 많이 출시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특히 패션을 비롯한 럭셔리에서 아트를 디자인에 접목한 경우가 많았다. 럭셔리와 아트는 속성상 서로 코드가 잘 맞기 때문인데, 독창성?장인정신?희소성이 바로 공통점이다.
이미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명화를 제품 디자인에 차용하는 것은 데카르트 마케팅의 첫 번째 단계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유명 화가를 비롯한 아티스트들과의 콜래보레이션(Collaboration), 즉 협업으로 진전된다. 일찍이 이탈리아의 패션 디자이너 엘자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는 1920년대에 초 현실주의 미술의 아이돌인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로 하여금 자신의 옷 위에 직접 그림을 그리고 보석을 디자인하도록 하여 파장을 일으켰다. 이브 생로랑(Yves Saint Laurent)은 1965년 겨울 컬렉션에서 기하학적 추상화가인 몬드리안 스타일의 드레스를 발표하여 몬드리안 룩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영국 YBA 군단의 대스타인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와 트레이시 에민(Tracy Emin)도 리바이스?롱샴과 협업하기도 했다. ‘죽음’을 테마로 작업을 해온 데미안 허스트는 현대미술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가다.
데카르트 마케팅의 유형
데카르트 마케팅에는 얼마나 다양한 유형이 있을까? 이미 있는 유명한 그림을 제품?포장지?라벨?건물 외벽 등에 그대로 반영하는 경우가 있고, 어떤 경우에는 이를 부분적으로 바꾸어 패러디 하기도 한다. 제품에 직접 반영하지 않더라도 광고에 아트적인 요소를 넣는 경우도 있다. 또 한 단계 진화하면 화가나 디자이너와 함께 특정 제품을 위해 특별히 디자인을 하기 위해 콜래보레이션 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데카르트 마케팅에서 협업이 대세다.
▲ 제품에 데카르트
우선, 제품 디자인에 명화를 사용한 경우를 보자. 우리나라에서 데카르트 마케팅은 가전 분야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주방을 음식 만드는 공간에서 벗어나 생활 속의 문화공간으로 변모시키기 위해‘갤러리 키친’개념을 도입했다. 예를들어 1990년대부터 꽃을 모티브로 작품활동을 해온 하상림 화가의 작품을 냉장고 디자인에 활용한 것이다. 또한 식물 같은 자연 형태에서 모티브를 얻는 아르누보(Art Nouveau) 디자인을 밥솥에 적용하기도 했다.
둘째, 상품 레이블(Label)에 명화를 올리는 경우를 보자. 프랑스 5대 샤또 중의 하나인 샤또 무똥 로쉴드는 매년마다 와인 레이블에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을 바꾸어 집어넣는다. 1924년 화가 장 카를뤼의 그림이 와인 레이블에 최초로 들어간 이후, 피카소?달리?샤갈?세잔?베이컨?발투스?칸딘스키?앤디 워홀
등 거장들이 와인 레이블에 잇달아 참여했다. 그만큼 샤또 무통 로쉴드의 품격을 올려준다. 전통주로 유명한 우리나라 배상면 주가의 술병 라벨을 보면 에로티시즘으로 유명한 이왈종 화백의 그림이 들어가 있다.
셋째, 제품 포장에 그림을 올린 경우도 있다. 해태제과는 초코케이크 ‘오예스’의 패키지에 심명보 작가의 장미 그림인‘패션 포 뉴 밀레니엄(Passion for new millennium)’을 인쇄해 판매했다. 심명보 작가의 패션 포 뉴 밀레니엄은 1,999송이의 장미로 1송이의 큰 장미를 그린 작품이다. 오예스 한 상자에 원본 미술작품의 1/3을 각각 인쇄했는데, 매장에서 오예스 세 상자를 잇달아 진열하면 하나의 작품이 된다.
▲ 파사드(façade)에 데카르트
요즘 건물 리모델링이 많아지면서 건설 기간 중 공사장 주변이 더러워짐에 따라 공사장 외벽에 예술작품을 올려놓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런 형태를 파사드(façade)라고 하는데, 지저분한 거리를 아름답게 꾸미는 효과가 있어, 문화 기업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2006년까지 공사를 했던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 건물 외벽에는 실내장식가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겨울비(Golconde)’가 그려져 있었다.
최근 들어 파사드를 활용한 데카르트 마케팅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소재는 물감이나 페인트가 아니라 조명으로도 가능하다. 이처럼 미디어를 활용해 건물의 벽면을 디스플레이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을 미디어 파사드(media façade)라고 부른다. 미디어 파사드는 IT 기술과 미디어를 적극 활용한 미디어 아트와 디지털 아트의 결정체다. 조명으로 정적인 그림만을 보여주지 않고 아주 다이내믹한 동영상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도시의 규제 여부에 따라 상업적 광고를 보여주기도 있다. 1996년부터 시작된 뉴욕 타임스 스퀘어(Times Square)의 미디어 파사드에서는 현란한 광고가 나온다.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에 LED 조명의 미디어 파사드에서도 미디어 아티스트 줄리언 오피와 양만기의 작품이 나간 바 있다.
▲ 화가와 협업을 하는 경우
명화를 제품에 그대로 올리지 않고 작가와 함께 작업을 하여 협업(Collaboration)을 하는 경우도 많다. 삼성전자는 하우젠 냉장고 디자인을 할 때 앙드레 김과 협업을 하였고, 앙드레 김은 KB카드에도 직접 디자인을 한 바 있다. 휴대폰 경우, 삼성전자의 아르마니폰?베르사체폰이 대표적이며, 아르마니는 벤츠와 협업하여 벤츠 아르마니 버전을 만들기도 했다. 프리미엄 자동차로 도약 하고자 하는 현대자동차도 2011년에 럭셔리 기업 프라다와 함께 제네시스의 서브 브랜드로 제네시스 프라다를 고가에 1,200대 한정 판매했다.
데카르트 마케팅을 할 때 유의할 점
기업이 데카르트 마케팅을 할 때에 유의할 점이 있다. 데카르트는 예술을 활용한 마케팅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스포츠 마케팅과는 달리 예술 마케팅은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보다 중장기적으로 보다 고차원적인 마케팅이기 때문에 일회성으로 마케팅을 하고서 높은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보다 방향성을 갖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데카르트 마케팅을 하려면 작가?아티스트와 협업을 해야 하는데 어떤 아티스트와 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도발적인 작품으로 기존 것과는 상당히 차별화하여 선도적 소비자에게 강한 각인을 주어야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상품 매출 증대에도 도움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루이비통도 2000년부터 여러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했지만 다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리처드 프린스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제 새로 시작하는 쿠사마 야요이는 물방울 무늬(polka-dot)로 어떤 성공을 거둘 지 귀추가 주목된다.
양(?)은 질(質)로, 질은 상(像)으로, 상은 격(格)으로 진화 발전한다. 예술은 바로 상이자 격이다. 데카르트 마케팅, 아트 마케팅이 지금 그리고 앞으로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