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을 느낀 프로젝트가 있다면?
AE 하면서 교원을 10년 정도 담당했다. 교원 ‘빨간펜’을 경쟁 PT를 통해 영입했는데, 2년쯤 후 제일기획이 하던 ‘구몬학습’까지 우리에게 맡겼다. 또 몇 년 후 신규 사업으로 화장품을 론칭하면서 그것도 우리에게 줬다. 10년간 경쟁 PT 없이 광고주로 유지하고 중간에 타 대행사가 하던 품목까지 넘겨받았으니, AE로서는 광고주에게 비교적 양호한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 개인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광고 일 대부분은 개인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라 공동 작업의 결과다. 전략이나 아이디어도 회의나 리뷰를 거쳐 발전하는 것이니 온전한 개인의 몫은 아니다. 제작팀, 팀장님, 본부장님 등 많은 사람의 노력에 내가 숟가락 하나 얹은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메인 AE로 한 광고주를 10년 정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볼 때,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
회사를 옮기지 않고 계속 근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좋은 사람 때문인 듯싶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인간관계가 폭넓지 않은데, 그래도 깊이 마음을 나누고 신뢰를 주고받은 사람들이 있다. 그중 내가 대리 때 차장님이시던 한 분이 있다. 10여 년 전 당한 교통사고로 지금도 병원에 계신다. 그분과 힘든 광고주 일로 서로 부대끼고 일할 때나중에 은퇴하면 같이 1년쯤 여행하자고 매달 조금씩 돈을 모았다. 2년 정도 모으고 중단했는데, 그 돈을 내가 관리했다. 아마 지금 그분은 그런 계획을 세웠는지조차 잊어버리셨을 거다. 사고 후 형수님에게 드리려다가 그만뒀다. 그 돈을 드리면 ‘이제 그분이 다시 일어난다는 희망을 내가 포기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그 돈을 갖고 있다. 가끔 그분을 생각하면 먹먹하고 눈코가 시려온다.
사람들과의 그런 관계가 쏠쏠히 있었기에 20년이 있었다고 본다.
앞으로의 마음가짐은?
나보다 좀 더 오래 다닌 분도 있는데, 아마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광고가 좋고 관심이 있어 입사했고 몰입해서 일했다. 그런데 연차가 많아지면서 광고 외에 회사도 조금씩 보이게 되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회사와 어떻게 관련되는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 과정에서 화도 나고 실망도 하지만, 애정도 커졌다. ‘아, 나는대홍기획 직원이구나’ 하고 한 번 깨닫게 된다. 내가 맡은 일이 회사가 나아가려는 방향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할 거다. 교과서적인 답변이지만, 그렇다고 광고를 통해 광고주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면서 사회와 사람들에게 따뜻한 울림을 주는 광고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건 더 오글거리지 않나. 그건 신입사원이 할 이야기 같다.(웃음)
Word by 김진경(편집부) Photographer 한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