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준영 상명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 jylee@smu.ac.kr
소비자가 주도하는 커스터마이징 마켓 트렌드가 가속화되고 있다. 대중을 위해 미리 만들어 놓은 기성품보다 소비자들의 서로 다른 취향이 반영된 제품이 각광을 받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수동적인 단순 구매자에서 창조적인 생산 참여자로 진화하고 있다. 이제 대량생산된 동일한 기성품을 소비하던 시대는 저물어 가고있다. 이에 기업들도 소비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제품과 서비스에 담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기업들이 소비자의 목소리와 이야기들을 적극 반영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의 평범한 이야기가 각광을 받으며 이른바 ‘스토리슈머(Story-sumer)’라는 마케팅 기법이 주목받고 있다. 스토리슈머는 이야기(Story)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비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품과 관련된 소비자들 자신의 이야기와 사연이 브랜드와 제품 홍보 등에 반영되면서 마케팅과 프로모션의 내용과 대상이 되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소셜미디어를 이용해서 바이럴 콘텐츠나 SNS 드라마, 앱소설 등의 콘텐츠를 개발하는 등 소비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반영되고 있다. 기업들은 단순히 이벤트나 제품에 이야기를 입히는 것에서 더 나아가 소비자들이 직접 만들어낸 다양한 스토리를 반영하고 있다.
최초의 사례는 덴마크의 한 보험회사가 2002년에 진행했던 캠페인이다. ‘살면서 가장 운이 좋았던 경험’을 공유하는 이 캠페인이 인기를 끌면서 고객의 이야기가 마케팅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스토리슈머는 또 다른 용어로 ‘스토리두잉(Story-doing)’이라고도 표현된다. 스토리두잉은 스토리텔링이라는 용어와는 차별되는 용어로, 기업과 브랜드의 스토리 시행 과정에 소비자가 참여함으로써 참여도와 공감을 높이게 하며 이에 따라 브랜드의 애착과 관여도도 높아진다. 스토리텔링은 단순히 제품과 브랜드의 스토리를 소비자에게 들려주는 것이지만, 스토리두잉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소비자를 스토리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레드불은 2003년부터 시작된 에어레이스 행사를 통해 세계인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며 레드불 브랜드의 새롭고 짜릿한 도전정신을 일깨우고 있다.
소비자를 위한 맞춤 상품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와 니즈를 반영하는 맞춤형 상품도 늘고 있다.
1. 여행박사에서 선보인 맞춤여행 ‘온리유투어’. 여행사들은 소비자가 가장 만족할 수 있는 여행을 실현시키기 위해 주문형 맞춤여행 브랜드를 출시하고 있다. ⓒtourbaksa.com
2. 컬러부터 케이스까지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할 수 있는 DIY 립스틱. 스킨푸드가 선보인 ‘마이쇼트케익’ 라인은 리필 타입의 색조화장품을 다양한 케이스와 조합해 소비자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했다. ⓒtheskinfood.com
맞춤 생산은 제품, 서비스의 일부나 옵션을 소비자의 의사에 따른 주문에 의해 생산, 판매하는 것을 가리킨다. 소비자들이 자유롭게 옵션 등을 선택해서 자신만의 맞춤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성해서 구매하는 형태가 대표적이다. 자동차의 옵션 패키지 등을 소비자들이 자유롭게 선택해서 맞춤 차량을 구매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있으며, 신용카드 상품 중에서는 소비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가맹점을 마음대로 골라 원하는 혜택을 받는 맞춤형 상품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트렌드는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여행업계에서도 이러한 맞춤형 상품을 많이 볼 수 있다. 여행박사는 ‘우리 가족 맞춤 여행’ 상품을 출시했는데, 여행을 원하는 소비자가 가족 숫자, 원하는 테마, 코스 등을 간략히 올려놓으면 전용 상담사가 맞춤 일정을 짜주는 방식으로 상품이 구성된다. 웹투어의 ‘나만의 기차여행 만들기’ 여행 상품에서는 소비자 스스로 기차, 숙박, 렌터카 등을 원하는 옵션으로 골라 맞춤형으로 예약한다. 휘닉스리조트는 가족의 여행, 레저,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원하는 객실 형태, 분양 금액, 혜택 구성 등을 직접 선택하게 하는 스마트 회원권을 출시하기도 했다.
소비자에 의한 창작과 변용
소비자들은 창조적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크리슈머(Cresumer)라는 신조어다. 크리슈머는 창조하다(Create)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서,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자 필요한 제품을 직접 만들어 소비하는 창조적인 소비자를 일컫는다. ‘무’에서 ‘유’를 생산하거나 기존의 형태에 변화를 창출하는 등의 창조적 생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소비자들은 특화형이나 맞춤형 상품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직접 물리적 제품이나 콘텐츠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지난해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모디슈머’라는 신조어는 크리슈머의 새로운 버전이다. 모디슈머는 수정하다(Modify)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인데, 제조사에서 제시하는 표준 방법에 따르지 않고 제품을 자기 방식대로 재창조해 내는 소비자를 말한다.
1. 아디다스에서는 스타일, 컬러, 로고 위치, 패키지 등 소비자가 하나하나 선택한 요소를 조합한 커스텀 운동화를 판매한다. 사이즈도 양발 각각 주문할 수 있는 ‘마이 아디다스’ 서비스는 자신의 취향을 십분 반영할 수 있어 소비자 만족도가 무척 높다. 한국 시장에서는 내년에 선보일 예정이다. ⓒadidas.com
2. 소비자가 환타에 환타를 더해 새로운 맛을 재창조하고, 재미있는 이름을 붙이며 즐기는 코카-콜라사 환타의 ‘환타 믹스’ 마케팅은 달라진 소비자들의 성향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대표적인 사례다. ⓒCoca-Cola Korea
모디슈머는 식품 업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너구리’ 라면과 ‘짜파게티’를 결합한 ‘짜파구리’에 이어서 오징어짬뽕과 짜파게티의 결합인 ‘오빠게티’가 등장하기도 했다. 대형마트 등에서는 오빠게티 패키지 상품이 등장하고 이 레시피를 소비자들에게 나눠주는 행사를 벌이기도 한다. 스타벅스에서는 여러 메뉴를 조합한 ‘악마의 음료’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뿐 아니라 유행 신발에 직접 페인팅을 하기도 하고 화장품 등도 스스로 재창조하기도 한다. 화장품 업계에는 전혀 다른 종류의 제품을 기능에 따라 섞어 쓰거나 두 가지 이상의 색조 제품을 활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색깔로 만들어 쓰는 소비자들도 생겨나고 있다. 신발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리폼한다거나 단색의 기성 제품을 구입해서 독특한 무늬를 그려 넣기도 한다.
환타는 올해 환타에 환타를 더해 새롭게 즐기자는 '환타 믹스'를 콘셉트로 유튜브에서 소비자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구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환타가 TV 광고를 통해 오렌지맛, 포도맛, 파인애플맛, 딸기맛 등 다양한 환타의 맛을 믹스해 '눈 돌아가는 맛’, '불금 댄스의 맛’ 등 새로운 맛의 환타를 제안한 것에서 나아가 소비자들은 ‘썬더 플레이버’, ‘베리스트롱’, ‘오빠의 비밀’ 등 기발한 환타 믹스 레시피와 이름들을 창조해 냈다. 소비자들의 재치와 위트가 담긴 환타 믹스 레시피 영상이 SNS 채널을 통해 빠르게 퍼지면서 브랜드 인지도와 로열티를 높이는 역할을 했다.
제품 생산에 참여하는 소비자
결국 기업들이 이들 소비자의 창조성과 능동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이제 기업들은 소비자들을 적극적으로 제품 기획과 생산 과정에 참여시키고 있다. CJ제일제당은 ‘톡톡(Talk Talk) 주부연구원’을 모집해서 맛집 탐방, 시판 제품에 대한 조사, 프로젝트팀 구성, 아디이어 공유 등을 통해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고 직접 제품을 개발하고 제작하는 소비자 참여형 프로그램을 구성해 운영한다. 본죽과 본도시락을 운영하는 본 아이에프는 주부 서포터즈 ‘본매니아’를 통해 신메뉴를 시식, 평가하기도 하고 아이디어 공모전을 실시하고 소비자의 입맛을 반영한 메뉴도 개발한다.
3,4. 단순히 음악을 듣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패션 아이템이 되면서 나만의 이어폰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맞춤형 수제 제작 이어폰 브랜드인 하이디션은 다양한 제품 라인을 갖추고 있으며, 고객별로 원하는 디자인을 만들어 준다. ⓒhidition.co.kr
5. 뉴욕 맨하튼에 위치한 소셜 레스토랑 4 Food에서는 무려 1억여 개가 넘는 다양한 맞춤 주문 햄버거를 판매한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디자인한 햄버거를 빌보드 차트에 올릴 수 있으며, 해당 햄버거가 팔릴 때마다 25센트의 적립금을 받을 수 있다. ⓒ4food.com
6. 수제 핸드백 브랜드 지안코미나는 ‘나만을 위한 명품’을 추구하는 소비자를 위해 디테일, 컬러, 소재 등을 취향대로 변형할 수 있는 맞춤 핸드백을 제공한다. ⓒgiancomina.co.kr
한화 L&C도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고 활동적인 주부 프로슈머로 구성된 한화 L&C 소비자패널 ‘엘렌’을 모집해 디자인과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동부건설도 주거상품을 개발하는 크리슈머 그룹을 운영 중이며, KT&G에서는 소비자가 직접 겉포장을 디자인한 담배를 제품으로 출시해서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결국 기업들은 창조적 소비자로 불리는 크리슈머(Cresumer)를 통해 자사 제품의 개발·디자인·판매 방식에 소비자들을 적극 개입시켜야 할 것이다. 기업과 크리슈머 사이에는 파트너십이 형성되고 최종적으로는 크리슈머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유행과 트렌드에 대처하고 궁극적으로 고객만족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는 이제 커다란 변혁기를 맞이하고 있다. 생산의 영역에서 소비자의 목소리가 더욱 강해지면서 많은 기업이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를 창조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더욱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변모해가는 ‘능력자’ 소비자들을 무시해서는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없을 것이다. 커스터마이징 마켓의 발전과 진화는 대량생산 시대의 근원적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진정한 소비자의 세상이 오고 있다.
이준영은 상명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등에서 근무했으며, 저서로는 공저 <트렌드코리아 2010~2014> 등이 있다. 한국소비자학회 우수논문상, 한국소비자정책교육학회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