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우리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드론의 진화는 물론, 몇 년 내 상용화될 자율주행자동차와 로봇 산업 발전까지 가세하면 우리의 일상은 상상하지도 못할 그림으로 바뀌어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근미래 우리의 일상을 상상력과 통찰력을 발휘해 흥미로운 스토리로 재구성해본다. 우리에게 가장 영향력이 클 넥스트 테크놀로지를 중심으로 그려보는 어느 미래인의 하루다.
Text. 안병도(IT평론가)
Illuatration. 김근예
01 굿모닝(Good Morning)
“좋은 아침이에요, 성현 씨.”
부드러운 음악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침실 조명이 조금씩 밝아지며 잠자리에 머무는 나를 깨웠다. 살짝 기지개를 켜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드시겠어요?”
상냥하면서도 쾌활한 목소리가 나에게 대답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이 아니다. 인공지능을 가진 내 개인비서 ‘은빈’이다.
“은빈. 오늘이 며칠이지?”
어제 늦게까지 부서 회식자리에 있다가 돌아온 탓에 정신이 약간 몽롱했다. 두 달 전에 입주한 이 스마트 아파트의 구조도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
“어제 과음하셨나봐요?”
약간 비틀거리는 내 동작을 감지한 은빈은 존재감을 과시하듯 거실 벽면에 매립된 대형 스크린을 켰다. 그녀는 사물인터넷(IoT)으로 연결된 내 집의 모든 장치를 총괄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2025년 12월 19일이에요. 크리스마스이브가 머지않았죠. 그런데 커피는 어떻게 할까요?”
“아메리카노로 줘.”
은빈은 10년 전부터 각광받던 애플의 인공지능 시리에서 발전한 시스템이다.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니라 감정에 해당하는 여성형 인격까지 갖추고 있다.
“지금 시각은 일곱시 오분입니다. 설정하신 출근 시간까지 한 시간 남았네요.”
천장 스피커를 통해 전해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그래서 자동응답기처럼 기계적인 음성이 아니다. 어조도 다양하고 내 목소리를 분석하여 사용자의 감정까지도 살핀다. 사물인터넷 커피포트가 자동으로 원두를 분쇄해 커피를 끓여주었다. 향긋한 모닝커피를 손에 든 나는 잠시 소파에 앉아 스크린에 떠오르는 주요 뉴스를 살펴보았다. 중동에서는 분쟁이 계속되고 아프리카의 식량난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따.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중국 경제 의존도를 낮추려면 남북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경제연구소의 발표가 새로 나왔다.
“출근하셔야죠?”
평소보다 너무 오래 소파에 앉아 있는 내 동작을 감지한 은빈이 조심스럽게 출근을 재촉했다. 아차. 관심분야 뉴스라서 너무 몰입했나보다. 허둥지동 준비를 마치고 현관을 나가려는 나에게 은빈이 당부했다.
“저녁부터 눈 내릴 확률이 70%$네요. 우산 가져가셔야죠.”
“오케이.”
신발장 옆에 있는 접이식 우산을 든 나는 집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가 살짝 진동하면서 빠른 출근을 재촉했다.
02 보이지 않는 운전사
“출근. 사무실로.”
자가용에 탄 나는 운전석에 앉자마자 목적지를 명령했다. 내 말을 알아들은 차량 운영체제는 시동을 켜고 운전석 옆 디스플레이 패널에 경로를 표시했다. 그러고는 스스로 도로에 나와 최적화된 길을 달려나갔다. 굳이 내가 운전대를 잡을 필요는 없었다. 구글이 상용화한 무인운전시스템이 지도 앱과 연동해서 직장까지 나를 안전하게 데려다준다.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되는 교통량 데이터까지 참조하여 주행하기 때문에 숙련된 운전사보다 우수한 능력을 발휘한다.
물론 목숨과 관련된 자동차이기에 언제라도 수동으로 운전할 수 있다. 내가 운전대를 잡고 페달에 발을 올려놓는 것만으로 자동차는 제어를 나에게 맡긴다. 비상상황에서는 언제든 내가 직접 운전할 수 있는 것이다. 구글은 벌써 10년째 무인자동차의 안전성을 홍보하고 있지만 결국 이런 시스템을 적용하고 나서야 일반 판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모든 기술이 다 그렇듯 밝은 면만 있는 건 아니다. 무인운전시스템을 믿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해외에서 차량 제어시스템을 노린 해킹사건이 터질 때마다 국내 보안업체들이 바빠진다. 정부에서는 국가 보안을 위해 특정 차량의 운행 시스템을 정지시킬 수 있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놓고 있다. 토론 방송에서는 지금 이 문제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는 중이다.
어쨌든 한번 발전한 기술을 다시 뒤로 돌릴 수는 없다. 10년 전부터 스마트폰은 돈과 개인정보를 노리는 각종 해킹의 주요 표적이었다. 그렇지만 그게 무서워 피처폰을 쓰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사무실에 도착해 주차까지 자동으로 해준 자동차가 ‘도착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표시했다. 차 문을 열고 내린 나는 얼마 전에 본 옛날 드라마 <전격Z작전>을 떠올렸다. 인공지능 자동차 키트를 손목시계를 통해 목소리로 조종하는 주인공이 인상적이었다. 그때 드라마를 만든 사람들은 상상할 수 있었을까? 막상 그런 자동차를 줬을 때 오히려 무서워서 거부할 사람들도 있다는 걸.
03 이 대리는 마법사?
“이번에는 이쪽을 한번 보시죠.”
오후부터 시작된 회의는 상당히 길어지고 있었다. 새로 내놓을 전략제품을 기획하는 자리인 만큼 참석자 모두가 진지했다.
“건강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은 언제나 높습니다. 그런데 대기오염은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최근에는 공기청정기의 실질적 성능을 높이는 것이 핵심과제로 떠오르는 중이지요.”
회의실에 들어온 모두는 얼굴에 홀로렌즈를 쓰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가 개발한 안경을 통해 나는 증강현실(AR) 을 보고 있다. 내 눈앞에는 부분적으로 분해되어 내부구조가 드러나 보이는 커다란 공기청정기가 허공에 떠있었다.
“일주일 전 시장조사 결과에 의하면 새 제품을 구입할 때 가장 먼저 성능을 보겠다는 의견이 76%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필터 성능이라고 구체적으로 대답한 비율이 54%나 됩니다.”
개발부 이 대리는 자기 눈앞에 놓인 입체 그래프와 사진을 기리키며 설명하더니 손짓으로 그것을 한쪽 벽으로 치웠다. 그러고는 공기청정기로 다가왔다. 사실 이것 역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영상이었다. 아직 만들지도 않은 제품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해서 증강현실을 통해 가상으로 구현해놓은 것이다.
이대리는 손을 들어 필터 부분을 살짝 잡아 열었다. 그러자 그에 맞춰 증강현실 속의 제품 필터 부분이 분해되어 내부가 더 자세하게 보였다.
“현재 경쟁사는 이 부분에 더욱 특화된 필터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A사는 이런 필터를 쓰고, B사는 이런 방식을 추가했습니다.”
이 대리가 예시를 들 때마다 그의 손끝에서는 경쟁사 필터 부품이 저절로 생겨났다. 실제 회의실 모습과 겹쳐서 투영되는 3차원 영상은 매우 실감이 나서 마치 초능력이나 마법으로 물건을 소환하는 듯 했다.
“배 과장님의 의견은 어떠십니까?”
신형 필터의 필요성을 강조한 이 대리가 내 의견을 구했다. 언제나 의욕에 넘치는 모습인데 마케팅 부서인 내 지원이 필요한 모양이다.
“맞습니다. 게다가 중국에서 오는 미세먼지 농도가 해마다 올라가는 상황이죠? 그때마다 뉴스에서는 공기청정기를 소개하죠. 성능을 더 올려야만 우리가 시장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겨울이라서 잠시 뜸해졌지만, 내년 봄이 되면 어김없이 중국발 미세먼지 주의보가 뜰 것이다. 그 때 우리 회사 제품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도 선뜻 동의해주었다.
04 드론이 가져온 택배
“선물을 사고 싶어”
잊은 게 있었다. 여자친구와 크리스마스이브 데이트를 예약해놓았는데 선물을 아직 준비하지 않았따. 퇴근 후 방에 들어온 나는 은빈을 통해 인터넷 쇼핑몰을 호출했다. 가까운 선물가게에서 사는 방법도 있지만 좀 더 진귀한 걸 골라주고 싶었다.
“여자친구 크리스마스 선물인가요?”
내일이 크리스마스이브라는 것과 나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은빈이 구체적으로 물어왔다. 그녀는 내가 이용하는 모든 기기와 서비스를 기반으로 축적된 빅데이터를 통해 가능한 실제 비서처럼 물어보고 행동한다.
“맞아. 목걸이를 보고 싶은데 어떤 게 좋을까?”
“소개해드리죠. 요즘은 클래식 주얼리가 인기 있습니다.”
“볼 수 있을까?”
“잠시 기다리십시오. 프랑스 프레지오 숍과 이탈리아 밀란 숍에서 가상현실(VR) 제품 선택을 지원합니다.”
“보여줘.”
나는 방 안 책상에 놓인 가상현실 안경을 착용했다. 10년 전에는 무겁고 큰 스코프 형태였지만 지금은 소형화되어 선글라스 정도의 크기와 무게로서 무선연결로 작동한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주얼리 숍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초고해상도로 촬영한 360도 영상이 내 동장과 연동되어 움직였다. 직접 현지 가게에 입장하는 듯 착각할 정도였다.
물건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마트워치를 통해 전달되는 내 손 움직임에 맞춰 진열된 목걸이가 선택되기도 하고 돌면서 여러 각도에서 보였다. 목걸이 위쪽에는 각종 정보와 가격 등이 표시되었다. 선물할 목걸이를 고르고 배송수단으로 12월 23일까지 도착하는 항공 특별수송을 선택했다. 프랑스에서 직접 날아온 목걸이를 받고 좋아할 여자친구의 얼굴에 나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삐익! 가상현실 기기를 벗고 난 뒤 스마트워치가 메시지 수신을 알렸다.
-주문하신 물건이 5분 뒤 택배 드론을 통해 도착할 예정입니다. 받으시겠습니까?
이번에 아마존에서 새로 구입한 스웨터가 온 모양이다. 한국에 지사를 낸 아마존 코리아는 제일 먼저 드론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주요 쇼핑몰이 모두 드론 배송을 지원하고 있다. 나는 스마트 워치에서 ‘예’를 눌러 수신을 선택했다. 잠시 후 드론이 도착하면 고유 ID가 포함된 근거리감지시스템(NFC)으로 내 아파트 창문에 신호를 보냈다. 신호와 내 수신 의사를 받은 사물인터넷 창문이 열리고 드론이 날아 들어와 택배 물건을 전달했다. 포장을 열어 곱게 접힌 붉은색 스웨터를 꺼냈다. 가상현실을 통해 꼼꼼히 선택한 덕분에 소재와 디자인이 원하던 대로다.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풀린 하루, 잠자리에 든 나는 랜덤으로 곡을 연주시켰다. 드보라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가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나는 행복하게 눈을 감았다.
잘 자라! 멋진 신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