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중반의 대학생들이 오버사이즈 재킷과 휠라(FlLA) 브랜드의 신발을 착용하고 ‘○○멘숀’, ‘○○구락부’, ‘경성○○’과 같은 이름의 술집에서 70, 80년도 디자인의 진로 이즈 백을 시키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매일 눈만 뜨면 새로운 상품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시대에, 태어나기도 전에 유행했던 패션 스타일, 제품, 브랜드, 심지어 추억의 광고들을 직접 찾아보기까지 20대들이 옛날 문화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광고계의 메인 스트림 중 하나는 뉴트로(Newtro : New + Retro)다. 40대 이상의 세대들이 추억을 찾아가는 레트로와는 결이 다르다. 80년대부터 2000년 초반의 문화를 경험해보지 않은 Gen-Z세대가 주 소비층이다. 그들은 과거의 패션, 음악, 영상 등을 올드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힙하다고 한다. 이 ‘힙함’을 충족시키기 위해 광고도 뉴트로 컨셉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하이트 진로에서 만든 진로 이즈 백(Jinro is Back), 진로 소주가 다시 돌아왔다. 뉴트로 컨셉을 표방하여 병 디자인, TVCF 캐릭터, 폰트모두 과거의 향기가 난다. 하지만 힙하다. TVCF는 두가지 버전으로 제작됐다.
첫번째는 ‘돌아온 진로’편으로 흑백사진에서 흑백TV로 시선이 서서히 옮겨가며 시작된다. TV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애니메이션 CF진로의 영상이 나온다. 영화 대부가 연상되면서 ‘전설’의 컴백을 은밀히 알렸다. ‘주점’편은 소주를 마시려는 그룹의 상을 진로의 대표 캐릭터인 두꺼비가 엎어(?)버린다. 깔끔하게 치워진 상에 진로 병을 놓이며 깔끔한 맛을 강조한다. 상을 엎는 장면과 민망한 정적은 과거 Panda Cheese 광고를 떠올리게 한다. 진로가 왔다고 얘기하는 듯한 두꺼비의 표정에 피식 웃음이 절로 난다.
TV광고 외에도 팝업스토어 ‘두꺼비집’을 열어 프로모션도 진행했는데, 내부 인테리어를 80년대 주점 컨셉으로 꾸미고, 추억의 즐길거리 등을 마련해 뉴트로 컨셉을 더욱 강화시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진로 이즈 백의 뉴트로 컨셉이 소비자들을 열광하게 만든 이유는 복고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한 옛날 소주가 주는 ‘멋과 향수’가 제대로적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뉴트로 컨셉을 표방하지만 TV 광고는 친숙하고 누구든 거부감 없이 볼 수 있기에 더욱 사랑받지 않았을까.
SBI저축은행의 광고 ‘저축가요’ 시리즈도 화제다. 80년대의 복고 의상, 촬영 기법, 창법 등이 고스란히 담긴 뮤직비디오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혜은이의 ‘제3한강교’, 장덕의 ‘너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를 개사한 ‘월급은 흘러갑니다’ 등 ‘저축을 하자’는 메시지를 재치있게 담아내 반응이 뜨겁다.
입에 착 달라붙는 멜로디와 촌스러운 패션, 가사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사실적인 영상미,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프로그램 ‘미스트롯’의 참가자 박성연과 요요미를 가수로 섭외해 광고 모델로 한 점 등 레트로의 완벽한 재현은 젊은 세대에겐 신선한 재미를, 중장년 세대에겐 추억을 선사하였다.
SBI 저축은행의 ‘월급은 흘러갑니다’편 뮤직비디오는 Youtube에서 400만회에 가까운 조회수를 달성했다. 뒤를 이은 시리즈들도 각각 100만회, 180만회의 조회수를 달성했다.
90년대 인기 댄스 가수 김완선이 에버랜드에서 춤을 춘다. 1991년의 자연농원의 공연이 아니다. 에버랜드가 할로윈 축제를 위해 제작한 ‘Blood City’ 광고다. 김완선은 히트곡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에 맞춰서 좀비들과 함께 춤을 춘다. 옛날 노래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세련미 넘치는 영상과 칼군무, 뱀파이어를 연상시키는 김완선의 모습은 스킵 버튼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뉴트로 컨셉을 완벽히 커버할 수 있는 빅모델과의 콜라보레이션은 친숙함과 동시에 흥미를 자아낸다.
손으로 진하게 써내려 간 간판이 네온사인보다 많았던 시절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간판 글씨체를 보기만 해도 포근함과 정겨움이 느껴질 것이다.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은 광고카피부터 프로모션까지 자체 개발한 서체를 활용해 브랜드를 전달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지난 10월, 한글날을 맞아 레트로 감성을 지닌 을지로체를 내놓았다.
손으로 진하게 써내려 간 간판이 네온사인보다 많았던 시절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간판 글씨체를 보기만 해도 포근함과 정겨움이 느껴질 것이다.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은 광고카피부터 프로모션까지 자체 개발한 서체를 활용해 브랜드를 전달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지난 10월, 한글날을 맞아 레트로 감성을 지닌 을지로체를 내놓았다.
을지로체는 디자인 컨셉을 도시 전체로 확장해 을지로라는 공간의 느낌을 서체에 담아냈다. 을지로 간판 장인들이 함석판이나 나무판등에 붓으로 쓴 글씨를 재해석해 탄생한 을지로체는 페인트 붓글씨 특유의 느낌을 살려 획의 시작은 힘차고, 마지막은 부드럽게 마무리된 것이 특징이다. 보기만해도 정겨운 을지로체는 70년대 손으로 간판을 제작하던 레트로 감성이 마구 묻어나온다. 무엇보다 오래되었지만 가장 젊은 디자인의 느낌이 난다.
을지로는 최근 ‘힙지로’라는 애칭을 얻으며 한국 뉴트로 플레이스의 중심이 되었다. 다양한 노포와 허름한 거리의 분위기는 중장년층의 ‘핫플’이었지만 최근 힙스터와 인플루엔서들의 영향일지, 뉴트로 붐에 딱 맞는 공간이라 그런지 2~30대에게도 핫플레이스로 잘 알려져있다.
김완선 외에도 덕을 톡톡히 보는 광고모델들이 있다. 과거 드라마, 영화, 광고에서 회자되었던 밈(Meme)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특히 김영철, 김응수는 밈과 함께 부상한 라이징 스타다.
그들이 출연한 야인시대, 타짜는 각각 2002년, 2006년에 제작되어 15년을 훌쩍 넘긴 작품들이다. 작중 김응수의 ‘묻고 더블로가!’와 김영철의 ‘사딸라(4달러)’는 인터넷 밈으로 꾸준히 쓰여 온라인 상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버거킹이 올데이킹 세트를 출시하면서 김영철의 ‘사딸라’ 밈을 활용했고, 그 뒤를 이어 김응수를 광고 모델로 섭외해 광고에서는 보기 어려운 티저 광고를 제작했다. 티저 광고를 통해 소비자들의 기대감을 유도했으며, 본편에서 김응수는 ‘묻고 더블로 가!’ 라는 유명한 대사를 통해 더블 패티를 광고했다.
반가운 얼굴이 또 있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는 광고 카피(대사)로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신구는 이제 오징어 맛을 묻는다.
올해 9월, 롯데리아에서 오징어버거 한정판매를 시작하며서 선보인 광고다. 스토리, 영상 모두 2002년 크랩버거 광고와 똑 닮았다. 바뀐건 화질과 음질뿐 분명 촌스럽고 옛 느낌이 물씬 나는 광고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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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당시 광고를 알고 있던 몇몇 소비자들은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800만회라는 조회수는 이 광고에 만족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방증한다.
뉴트로 열풍은 소비자들에 의해 콘텐츠가 끊임없이 재창작되고 공유되는 시대 속에서, 과거의 감성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20대들 뿐만아니라 추억을 다시 맛볼 수 있는 40, 50대까지 폭넓은 소비자를 아우를 수 있는 만큼 한동안은 계속해서 광고계 트렌트 주류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