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필수과목으로 도자 수업을 들어야 했던 대학교 시절. 초등학생 때 찰흙을 손으로 비벼 개똥 모양을 만드는 게 전부였던 나에게 어른들의 진짜 도예는 신세계였다. 한 땀 한 땀 지문을 묻혀가며 그릇을 성형하고, 인기 있는 컬러가 뭔지 찾아보며, 유약 쇼핑도 즐기고, 가마에서 구울 때 터지지 않기를 바라며 기다리던 시간들. 도예를 하고 나면 손도 거칠어지고 옷엔 흙먼지가 묻고 머리는 산발이 되지만(흙먼지가 사방에 날려 머리가 푸석해진다) 지금 생각하면 꽤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때의 추억을 잊지 못해서일까? 직장인이 된 지금도 가끔 시간이 날 때면 원데이클래스나 단기 수업으로 도예 공방을 찾는다. 직장인이 되어 맛본 도예의 매력은 20대 초반에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해서 혹여 도예에 관심이 있거나 새로운 취미생활을 찾는 대홍인이 있다면 이번 글을 빌어 내가 느낀 ‘직장인에게 도자 굽기가 좋은 취미인 이유’를 소개한다.
첫 번째, 머리와 마음을 비울 수 있는 시간
도자를 만들 때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물레를 돌릴 때도 자칫 잘못하면 모양이 뭉개지기 일쑤고 도자칼로 조각하다 보면 처음 구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모양이 나오기도 한다. 원하는 모양대로 예쁘게 잘 만들기 위해 집중하다 보면 3~4시간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간다. 하지만 오히려 좋아.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퇴근 후 나만의 자유 시간을 방해하는 여러 잡념을 없애주고 어느덧 머리도 마음도 깨끗하게 비어 평온한 상태가 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두 번째, 인내심 마스터의 탄생
도자기를 만들다 보면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힌다. 예를 들어 손에 열이 많은 편인 나는 흙을 만지다 보면 금세 수분이 빠져나가 도자기에 금이 가 원치 않게 윗부분을 도려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는 흙을 반죽할 때 공기가 들어가면 가마에서 구울 때 도자기가 터져버리기도 한다. 하나가 터지면 옆에서 같이 굽던 도자기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떨 때는 피해자,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기껏 공들여 만들어 내 역작이라고 자부했던 도자기가 그렇게 깨져버리면 참을 인(忍)을 세 번 새기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데 보름에서 한 달 정도 걸리다 보니 이런 과정을 몇 번 겪고 나면 진득하게 참고 기다리는 자세가 강제로 길러진다.
세 번째, 스트레스 풀기 적합한 K-슬라임
한때 피젯스피너(Fidget spinner)가 유행한 적이 있다. 손가락으로 끊임없이 돌리는 장난감으로 같은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불안함을 해소하고 스트레스를 풀게 하는 장점이 있다. 최근에 유행한 슬라임도 같은 원리다. 꾸덕한 뭔가를 손으로 만지며 만족감을 얻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이런 점에서 말랑말랑 시원한 흙을 조물딱거리는 도자는 어찌 보면 조상들의 K-슬라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또 하나, 반죽의 공기를 빼내기 위해 바닥에 흙을 내려치고 손으로 치대는 과정에서 흙에 주먹질을 하거나 패대기치며 스트레스를 푸는 재미는 덤으로 가져갈 수 있다.
최근 들어 ‘취미’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워라밸을 중요시하는 세대에게 취미는 일상과 일을 분리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취미생활에 집중할 때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나 고민을 잊어버릴 수 있고 취미를 즐기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의 시간’이다. 이런 이유로 도자 굽기는 요즘 나에게 더욱 소중한 취미가 됐다.
만약 지금 정신을 집중할만한 수단이 필요하거나 손으로 무언가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월화수목금?로 지나가는 주말에 좀 더 색다른 경험을 더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도자 굽기를 추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